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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r 10. 2024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3.9/토)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오늘은 유난히 짧은 하루였어요. 아들 친구들이 12~1시 사이에 모두 모였습니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온다고 했지만, 감자탕 냄새를 계단까지 솔솔 흘려놨거든요. 아기들이 한 명씩 들어오길래 반기며 물었습니다.


"시후야 점심 먹었니?"


"아뇨. 아침을 늦게 먹어서요"


"잘됐네. 우리도 점심 아직인데 이따 같이 먹자?"


"네~"


5명의 친구들 대답이 모두 같았어요. 놀라운 건 다들 감자탕을 처음 먹는다는 거예요.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요. 찹쌀 넣고 새 밥도 하고 감자탕 한 그릇씩 먹이니 등뼈 3kg은 별것도 아니었습니다. 한참 먹을 때라 그런지 밥 다 먹고 또 과자를 사다 먹는다고 홈플러스에 갔습니다.


와~

먹성이 진짜 얼마나 이쁜지요. 잘 먹는 자식 키우는 맛은 다른 기쁨으론 비교가 안됩니다. 외아들을 키워 그런지 자식이 많으면 참 좋겠다 했습니다.


아이들이 한참 안 오길래 걱정하며 기다렸는데 한 40분 지나서 들어오는 거예요. 들어와서 물어보니 사이비 종교에 잡혀서 듣다 왔다는 겁니다. 심장이 쿵 내려 았습니다.

 

딴에는 자기들이 중2 남학생들이라고 안심했던 모양이에요.  그 얘길 끝까지 듣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엄마한테 전화하지 그랬냐고, 당장 뛰어갔을 텐데 했더니. 아들 말이 그렇게 오래 얘기할지 몰랐다며..(휴우)


가스라이팅 방법을 배워왔다며 웃는데 진심 환장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래도 오늘 저의 작전은 성공이었지요. 아들이 그럽니다. 애들이 감자탕을 좋아해서 자기도 좋았다고요. 근데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하네요. 다음에는 그냥 '피자, 컵라면, 짜장면'정도여도 된다고요.


요즘 아이들이 놀 곳이 없습니다. 워킹맘 집은 피곤해서 놀러 못 가고요.  한부모가정은 거의 아버지가 키우셔서 놀러 오는 걸 불편해하시고요. 주말에도 학원 일정이 있는 아이들 집은 친구들끼리 놀 나이가 아니고 공부할 나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면 아이들은 피시방을 가고 일진들에게 노출됩니다. 아들 친구 한 명도 일진이 억지로 피시방을 델고 다녀서 떼어내는데 고생을 했습니다. 학원 땡땡이는 치고 싶은데 땡땡이치고 갈 곳이 '편의점과 피시방, 카페' 밖에 없으니깐요. 학원 다니는 아이들은 편의점에서 밥을 먹고, 카페 가는 게 생활입니다. 신기하지요? 이제 중2인데요. 학원 보내는 집은 보통 용돈은 넉넉히 주시더라고요. 또는 학원을 안 갈방법을 최대한 찾고 부모님과 엄청 갈등을 겪습니다. 중2면 아직 놀아도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집에서 가르쳐도 되고요. 자기주도 학습도 가르치고 한두 과목만 아이의 진도에 맞춰 봐줘도 갈등이 덜할 듯싶은데요. 교육에 정답이야 없겠지만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 배회하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신기하죠. 이젠 무의식도 엄마가 되었나 봅니다. 유튜브에서 이이경 씨가 부르는 '좋은 밤 좋은 꿈' 노래가 좋아 밤새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색도 좋고 발성도 좋고 음감도 좋다. '아, 이이경 씨 어머님은 아들이 얼마나 이쁠까' 였어요. 이이경 씨가 나보다 10살 더 어린데 이분을 내 아들처럼 대견스러워하고 자랑스러워할 건 아닌데요. 어머나 내가 미쳤나 보다 했습니다.


보통 어른들이 말씀하시잖아요. 나이만 먹지 마음은 소녀라고요. 모두가 열여덜은 아니었나 봅니다. 마음도 세월을 달리는 엄마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었네요.


내가 나이 들었다는 징조를 생각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금쪽같은 아들이 있음에 이번생은 그걸로 감사합니다.


내 마음이 꽃동산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내 아들이 꽃동산을 뛰어놀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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