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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r 12. 2024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3.11/월)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오늘은 고대하던 글쓰기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저장 메모리가 심각하게 부족했다. 방대한 지식 앞에 무너져 도망가는 본능을 붙잡느라 두통이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애기가 날 닮았나 보다. 수업시간에 고도의 집중을 해서 머리가 아프다는 게 유전이었구나.


수업시간에 속으로 수도 없이 외쳤다.


"아아.. 선생님........"


"어떻게 다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요즘은 24시간 글생각만 하고 있지만 삼 년을 기다리던 일이었다


성장에는 기쁨과 고통이 함께 찾아오는 법. 마치 동굴 속에서 마늘을 먹으며 인간이 되길 기다리는 곰 같다고 할까.


나는 평생을 배워도 선생님 머리에 1% 라도 내 것으로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토록 샘물을 찾아 이 땅 저 땅 파도 안 나왔는데,

지금은 지하수가 솟구쳐 오른다. 이때가 신이 내게 잠시 머무시는 시간이리라.


아들이 엄마는 변태 같다고 말한다.

이모를 대할 때, 나랑 얘기할 때 아빠랑 있을 때, 일할 때, 글 쓸 때, 공부할 때가 다 다르다고 한다.


다중인격 내지는 곤충의 변태 같기도 하고 또는 도라이 같기도 하단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이유는?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데 또 싫어한단다.

그러면서 또 찾아서 계속 배우고 고통스러우면서

그걸 즐긴단다.

그러니 변태가 아니면 도라이 아니겠냐는 거다.


아들 말이 웃겼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수학 공식 배울 때 이해는 가는데 한편으로 이해하기 싫은 마음 있지?"

"알겠는데 복잡해서 생각하기 싫은 거. 본능. 그거야"

"인간은 두뇌를 쓰는 걸 극도로 꺼려하게 진화해서 공부가 재밌으면서 고통스럽고 그러면서 그 고통이 또 기쁨이 되는 거야"


아들이 한마디로 엄마는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어떤 게 가장 엄마 같은데?"


"공부할 때, 책 볼 때!"


"왜 그렇게 보이는데?"


"그때는 온전한 엄마 이름으로 사는 거 같아"

"누구의 뭐가 아닌"

"진지했다가 웃고,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그게 본래 엄마 같아"


뭔가 속에서 찡한 게 올라왔다.


엄마한테 변태 같다고 한건 용서.

도라이라고 한  인정.


사람은 상대와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고 변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아들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가 가장 엄마다운지. 엄마가 무얼 진짜 좋아하는지 보고 있었다. 그게 오늘의 버퍼링을 치유하는 약이 되었다. 아들의 이쁜 마음이 시끄러운 코골이 소리경쾌한 연주로 만들었다.


그토록 막혀 있던 부분들이 태풍을 만나 씻기고 있다. 그러니 혼란스러운 건 당연할 수밖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오늘 공부한 건 다 정리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머리가 더 아프다.


조금만 여유를 가져보자.

어차피 나의 화력만큼 밖에 연소시킬 수 없으리라.


내가 뛰어봤자 메뚜기 아니겠는가.

(벼룩은 아닐 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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