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 May 18. 2024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5.18/토)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오늘의 날씨는 맑음이다. 최근 가장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는 날. 일곱 시간 반을 자고 일어나니 신경통도 사라지고 온몸이 가벼워졌다.


이런 보통의 날.

그토록 원하던 귀한 시간이다.

어제는 항불안제와 우울증 약도 깜박하고 못 먹고 잤는데도 평온하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날이다.

 대청소도 하고 싶고, 냉장고도 뒤엎고 반찬도 모두 다시 해놓고 싶다. 옷장도 정리하고 이불도 다 빨고 싶고, 내방 책꽂이도 다시 정리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하고 싶은 게 다 청소네..


저런 일주일 후 아들과 보는 한자급수시험 그것도 어지면 창피하니 한번 봐둬야 하는데 무슨 대책인지 모르겠다. 전생에 청소에 한이 맺혔는가 보다.


어제도 법원 간다고 전날부터 치우고 감자탕에 버섯 전을 부쳐놨다. 갔다 와서 밥을 못할까 봐 걱정되서였다. 왜 이렇게 치워 병이 있는가 모르겠. 이것도 강박일 수 있는데, 강박이라기엔 우리 집 청소상태가 별로이다. 발 10개에 치우는 발은 두 개뿐이라 두발이 종거려야 한다.


이 좋은 날에 외출을 해도 좋을 텐데, 집순이 성격이 어가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른 하고 싶은 일도 다. 가까운 정발산도 가고 싶다. 산을 참 좋아하는데, 동네산을 못 다닌 지 한참 되었다. 가볍게 배드민턴도 치고 싶고, 볼링나 탁구도 치러 가면 좋겠다.


안 아프니 할 수 있는 게 많구나.

계속 안 아프다면 예전처럼 기차표를 끊어 훌쩍 바다로 떠날 텐데..


무박 무계획으로 다니던 기차여행이 사뭇 그립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힐링 방법 뮤지컬과 연극도 나의 세상로 다시 데려 오고 싶다.


이 모든 일들을 다시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이가 엄마와 같이 보고 싶은 뮤지컬을 얘기한 적 있다. 어려서 어린이 연극과 뮤지컬을 많이 보여주었더니 커서 도움이 되었나 보다. 중학교에 오니 교과에 여럿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더 호기심을 갖게 거 같다. 엄마와 같이 보고 싶은 리스트를 말해주었는데 취향도 나와 비슷했다. '레미제라블, 영웅. 캣츠. 밤의 여왕 아리아, 맨오브라만차, 노트르담의 파리' 등이었다. 꼭 보고 싶은 것들이라고 했으니 모두 같이 보고 인증을 찍어놔야겠다.  아들이 같이 간다면 용기를 내서 서울까지 운전해 볼 생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은 다들 마지막 타임 공연이라 끝나면 거의 11시이기 때문이다.


건강하면 이렇게 보통의 삶을 살 수 있건강그 자으로도 크나큰 축복이다. 당장 서해안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온전히 회복되어 체력까지 좋아지는 날이 리라.


가을에는 꼭 무계획 여행을 다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올려두고 밖을 보는 걸 좋아한다. 여러 사념들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데로 굴러가는 기차 바퀴 뒤로 흘리고 온다. 그러면 몸과 정신이 싹 다 비워지고 홀가분해지는 효과가 있다. 이젠 나를 정화할 시점이 오고 있다.


"들었지 몸아"

"올 가을에는 내 소원 좀 들어줘"

"못 들은 척 말고~"





매거진의 이전글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5.17/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