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흔이 자란다

수필통

by 이음

엄마,
요즘 따라 엄마 생각이 자주 나요.
엄마가 지나왔던 마흔의 고통의 시간들이
이제서야 조금은 이해가 간달까요.

엄마, 나도 이제 엄마가 되어 많이 달라졌어요.
말괄량이 삐삐 같던 내가 이제는 좀 얌전해졌지요.
세상이 그렇게 다 신기하고 궁금해서는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엄마, 세상의 많은 질문들 속에서
제일 자주 듣는 대답이 뭔지 알아요?
“원래 그래.”
참 웃기죠?
그 말은 사람을 참 무디게 만드는 재주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그 쓰잘데기 없는

질문의 숲을 헤매는 일은 많이 줄었어요.
그렇다고 완전히 멈춘 건 아니에요.
타고난 성향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난 외향적이지만 동시에 내향적인 사람이에요.
북적이는 곳보단 조용한 걸 좋아하고,
당연히 흘려보낼 수 있는 일들에도
늘 한 번쯤은 의문을 품는 성향이죠.

그래서일까요.
난 적당히 고독해야 심신이 안정되고,
적당히 외로워야 마음이 쉬어요.
엄마, 엄마가 낳았지만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가지요?

이런 거예요.
낮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원,
그게 낮의 일상이잖아요.
하지만 밤이 되면 조용해지죠.
나는 그 공원 같은 사람이에요.
반은 세상과 섞여야 하고,
반은 홀로 있어야 살아지는 사람.

가끔 생각해요.
이런 내가 그래서 우울증이 온 게 아닐까 하고요.
반은 반드시 혼자 충전해야 하는데
살다 보면 ‘생계형 외향인’으로 살아야 할 때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온전히 ‘나’로 살 수 없었고,
나는 늘 ‘나’이기보다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로만 존재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속앓이를 하나 봐요.

엄마,
난 아직도 기억나요.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엄마가 내 손을 꼭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주던 날.
그때 엄마가 그랬잖아요.

“엄마는 어릴 때 언니들이랑 냉이밭에 가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내 땅이야!’ 하고 외치고 시작했단다.”

그리고 나한테 말했죠.
“학교 가서도, 세상 어디서도
너 할 말은 외치고 시작해.”

그때 나는 그 말이 정말 멋있었어요.
아직 캐지도 않은 냉이를
“이건 다 내 거야!”라고 외치는 엄마가
어찌나 대단해 보였는지 몰라요.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엄마의 배움으로 닿을 수 있었던
최선의 표현이었다는 걸 알아요.
그 짧은 한마디 속에
엄마의 인생과 지혜가 다 들어 있었으니까요.

엄마,
이제 나도 그 나이에 서 있어요.
그때의 엄마보다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살아서 그런가,
그래서 지금도 아파요.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학교에 보내고,
어떤 고통 속에서도 웃으려 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요즘은 문득문득 생각해요.
엄마의 그날의 웃음들이
어쩌면 마지막 힘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걸 이제서야 깨달았어요.

그래서 요즘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이제는 엄마보다 더 나이를 먹어
엄마를 안아드리고 싶어요.

엄마,
당신이 내게 해주던 그 말이 떠올라요.
“세상에선 네 목소리를 잃지 말아라.”

엄마,
나는 아직 완전히 괜찮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오늘 하루를 버티며
내 목소리로 살아가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엄마의 언덕 냉이밭만큼,
나도 엄마의 호미를 열심히 따라가 볼게요.

사랑해요, 엄마~



2025년 시월의 가을밤

엄마의 셋째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