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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리뷰런치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그토록 붉은 사랑)

독서_리뷰

by 이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영혼들이라서 일까?

우리는 뻔한 것에 식상하고 지루해 한다.

새롭고 신선한 것을 찾아 귀를 열고 마음을 연다.


나는 고기를 사는 집이 따로 있고, 야채를 사는 집이 따로 있다.

하나를 사도 신선한 집을 찾아 발품을 파는 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다독이 좋다지만 서점의 비슷비슷한 책들 속에 나와 맞는 글을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그래서 애정하는 문장을 만나면 일단 사들인다.

그 한 줄의 문장이 마음의 문을 열면 오롯이 나의 가슴에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준다. 나무는 살아서 나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쉴 그늘을 만들어 준다.


문법에서 품사는 수의 체계와 비슷하다.

명사가 정수라면 고유명사는 양의 정수일 것이다.

이와 같이 포함이 아니라 유일한 대상을 정해둔 걸 일컫는다.


작가는 지칭하는 단일한 대상에게 말을 걸고 화답을 듣는다.

지칭의 한자는 (指稱) 가르칠지에 일컬을 친이다.

가르칠지는 ‘가리키고, 곧추서다’는 뜻이다.

고유명사의 고자는 ‘굳어지고, 단단하다’이다.


‘고유명사의 고와(固) 고정관념의 고는(固) 굳을 고’로 동일한 고를 쓴다.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 고정된 명사인 것이다.


섞이지 않고 곧추세워 놓은 것들을 작가는 넘어뜨리고 풀어헤친다.


고정된 관념은 육개장과 같다. 굳이 하나하나의 재료의 맛을 음미하기 힘들다. 그래서 작가는 재료 하나하나를 분리해 본연의 맛을 보여준다. 깻잎은 쌈으로도 먹고 반찬으로도 먹지만 깻잎만 먹을 때가 가장 향긋하다. 독자가 가장 햣긋하게 맛보도록 연구하고 요리해 주는 것 같다.


“섬진강 상류에 봄을 풀어둔 사람을 만나러 갔다”


지칭되는 섬진강에 봄을 풀어둔 사람은 누구일까?


(봄 같은 사람이란 뜻으로 느껴진다. 봄 같은 사람이면 풋풋하고 싱그러운 햇살 같은 사람일 것이다. 본 적이 없는데도 봄을 풀어 놓은 사람 생각에 씽긋 웃음이 나온다.)


“부지런한 그 사람이 물푸레나무 군락을 쓰러트려 강에 부려 놓았는지 강물이 온통 새파랗다”


(봄 햇살 같은 그 사람이 강에 물푸레나무가 쓰러트려 짙은 녹음으로 친구를 마중 나왔나 보다. 정겹고 마음이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나는 푸른색 잉크 물이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걸으면서 내내 전나무 같은 신음 소리를 냈다”


(상상이 된다. 전나무의 울창한 숲은 고요하고 바람 소리는 산사의 풍경처럼 맑으리라. 부지런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풍경 소리처럼 맑게 파장을 이루었구나.)


정겨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마음도 풍경처럼 울리는구나.


그토록 붉은 사랑에는 이런 찐한 장미향 같은 글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홀로 나와 향을 내는 ‘그토록 붉은 사랑’의 단락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수도 있다.


섬진강에 물푸레나무를 넘어뜨려 마중 나오는 봄 같은 사람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아침독서가 길어졌다 .

배꼽시계가 파장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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