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일이었다.
그저께 언니에게 캘리최 영상을 보내줬다.
기존에도 많이 보내줬지만 거의 보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선물해도 잘 읽히지 않는다고 어려워했다.
둘째 언니는 우리 집에서 제일 예쁘고 인기 많던 혁명가였다.
깡촌에서 가장 먼저 문화를 접하고 혁명하는 선두주자였다. 그런 언니가 더 깡촌으로 시집을 갔다. 시골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80년대의 읍면의 세상에 살았다. 점점 발전하는 세상과는 멀어져 갔다.
그 사이 우리 자매들은 세상과 얼추 발을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둘째 언니는 자존감이 자꾸 내려가며 보석 같은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던 언니가 어제는 캘리최 영상을 3번 보고는 다른 영상도 찾아봤다고 한다.
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많다고 한다.
언니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머리가 굉장히 복잡하고 마음이 이상하다고 한다.
공인인증서 복사도 어려워하는 우리 언니는 이제 알을 깰 준비를 마친 것 같다. 우리 집에서 제일 잘나가던 언니의 모습을 다시 찾길 바란다. 꽃처럼 예쁜 언니가 활짝 피길 바라며 시를 썼다. 언니의 앞날이 봄날의 햇살 같기를 늘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