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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Nov 23. 2021

자기 코 길어진다

수달 가족의 해풍소

“자기야 맨날 자기 좋아하는 거를 사주지 말고

시나 한편 지어줘”


그러자 그가 말했다


“이뿌네, 이뿌네, 이뿌네”


이마를 막 때리듯 쓰다듬고

그렇게 얼렁뚱땅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해서

에릭 헨슨에 ‘아닌 것’을 공유의

낭독본을 보내왔다


[아닌 것 ]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나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

당신이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당신은 당신 웃음 속의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당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걸 알 때

당신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

당신이 안식처라고 부르는 곳이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들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아닌 것_에릭 헨슨>


시를 지어줄 수 없는 남편의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하니 흐뭇한 마음에 웃음이 나왔다


그날 저녁 내가 말했다


“자기야 옷이 작아진 거 같아

옷을 사야겠어”


“살을 빼”

“자기 옷 많잖아”

“옷에 맞춰”


내가 말했다


“낮에는 아니라며?”

“내 옷 사이즈가 내가 아니라며?”


“아니야 너야”


"쳇, 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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