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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Nov 20. 2022

누굴 닮아 그렇게 안 씻냐고 말하고 싶다

수달 가족의 해풍소

아침마다 머리 감기 전쟁이다. 나는 머리를 감으라고 하고, 아이는 감기 싫다고 한다. 정말 이 논쟁을 언제까지 더 해야 하는 하는지 모르겠다. 공부보다는 씻고, 치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갈켰는데도 들을 생각이 하나도 없다. 정말 누굴 닮아 그러냐고 말하고 싶은걸 겨우 겨우 참는다.


“그럼 니 맘대로 하고 가“


아이는 기죽은척하며 진짜 안 감고 갔다.


아오~


비듬을 생각하면 정말 미치고 환장할 것 같다. 남사스럽지만 본인이 괜찮다는 데 할 말이 없다. 언제까지 감겨 줄 수도 없고 일주일에 반은 내가 포기를 하고, 하루는 감겨주고, 이틀은 자기가 감고 간다.


아침부터 싫은 소리 한 게 맘에 걸려 데리러 갔다. 서프라이즈로 데리고 가서 외식을 할 생각이었다.


마침 아이가 나오고 있어, 아빠가 차에서 내려 불렀다. 아이가 엄청 좋아하며 친구와 헤어지고 달려왔다.


“웬일이야? 엄마 오늘은 안 아파?”


아이에 말에 미안하고 짠한 생각이 들었다.


“애기 데리러 왔지”

“엄마 아빠 점심 안 먹어서 외식 가는데, 너도 먹을 거야”


“당연하지, 어쩐지 오늘 점심을 조금만 먹고 싶더라 “


차를 타고 나오는데 아들 친구가 지나길래 창문 열고 인사를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들이 말했다.


“응 안 해도 돼, 저 친구 엄마 아빠 이혼했거든. 엄마 아빠가 데리러 온 것도 봤는데, 또 내가 부르면 부러울 수도 있잖아”

“그냥 가자, 상처될까 봐 그래”


그 말을 듣고 우리 부부 둘 다 ‘으응’ 하고는 조용해졌다. 이상했다. 그 친구의 입장이 이해되면서도, 그런 사회적 시선을 견뎌야 하는 아이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건 동정은 아니라 어른들이 잘 못한 미안함이었다.


두부모 가정이 마치 정상의 기준이 되어버린 우리나라. 내가 이혼하면 우리 아이도 역시 받게 될 사회적 편견의 시선. 세상은 늘 견뎌야 할 암벽등반 같았다. 하지만 소중한 우리 아이들에겐 부모란 튼튼한 계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치고 힘든 부모에겐 어떤 계단이 있는가? 부모들을 받쳐주는 사회적 안정장치가 없으면 아이들은 소외되고 방임될 수 있다.


아이들은 사회와 부모가 함께 키우고 책임져야 한다. 그런 세상이 선진국의 첫걸음 아니겠는가. 우린 왜 선진국이란 타이틀을 가지고도, 지체하고 방관하지 모르겠다. 인식부터 바뀌는 선진국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참 어른이 되어서야 세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른들이 많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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