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2.11.20/일)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신생아처럼 자고 나면 마법같이>
밤 10시 30분에 잠들어서 새벽 3시 30에 깨었다. 정신이 한결 맑다.
자고 일어나니 불안증은 가라앉고 숨은 조금 버겁다. 두통은 살짝 있고 나머지 컨디션은 좋았다.
거울을 보니 부기도 얼추 빠졌다. 이대로만 유지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살 것 같으니 거실이 보이고 엉망인 주방도 보인다.
다시 4시 30 분에 잠들어서 1시 30분에 일어났다.
점심을 먹고 잠시 안정을 찾으니 다시 숨이 차고 잠이 오기 시작한다.
새벽에는 청소를 참고 글을 잠깐 읽었는데 오후에는 얼른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해봤다.
이 정도만 움직이면 오늘의 에너지는 바닥이다. 요즘 내게 허락된 시간은 두어 시간 정도뿐이다.
약을 먹고 달라진 점을 생각해 보자.
약을 먹기 전에는 뭔지 모를 불안이 계속 존재했다.
약을 먹고 나서는 불안(걱정, 생각)을 망각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TV에서 ‘결혼 지옥이나, 고등학생 엄빠’ 같은 프로가 나오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래서 TV를 거의 안 본다. 우크라이나를 생각하면 남일 같지가 않고, 아이들의 급박한 상황이 눈에 밟힌다.
다친 사람들을 봐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약을 먹기 전에는 여러 상황들이 늘 나와 붙어사는 기분이었다.
약을 먹고 나서는 같은 대화를 하게 돼도 지나가는 말로 변했다.
이성적 대화는 가능하나 공감이나 감정은 차단되었다. 확실히 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게 참 다른 일이다. 그리고 뭔가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게 훨씬 편하다.
나는 삶의 일부는 계속 망각하며 살고 싶다. 나에게 처한 모든 상황을 잊고 싶다.
나는 의학적 지식은 없지만 선생님 말씀은 이랬다.
나의 증상과 약의 용량이 맞다면 약간은 깔아지는 게 맞다.
난 깔아지면 계속 잠이 온다. 진짜 신생아처럼 두세 시간씩만 깨어 있고 하루 종일 자고 있다.
처음 치료를 받았을 때도 일주일 넘게 자다가 점점 호전되었다. 그래서 자는 게 제일 좋다.
자고 나면 마법처럼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잊다 보면 다시 살 힘이 생길 테지.
내일은 사랑하는 아들과 데이트를 하고 싶다.
바삭 거리는 플라타너스 낙엽 소리도 듣고 애기 좋아하는 버블티도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