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2.12.19/월)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불안장애는 오히려 둔한 면도 있다>

요 며칠 전국에 눈이 내리고,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 날씨는 영하 14.5도이고, 체감온도는 영하 17.8도이다.

전국에 최강의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날씨는 한겨울인데도 내 마음에는 햇볕이 들고 있다.

산속 두텁게 쌓인 눈 속에서 연녹색 새싹이 고개를 빼꼬미 내미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불현듯 뻐근한 몸이 불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오메, 이건 기적이다.


"왜 몸이 뻐근한 게 기분 좋지"


"아~"


불편함의 구체적 이유를 알았다는 것이 나는 기쁜 것이었다.

목각 인형 같은 몸을 풀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마 불안장애를 앓고 나서부터 인 것 같다.

이런 별것 아닌 감각을 잊은 지 말이다.

사람들은 불안장애 하면 예민하고, 어떤 감각에 날카롭게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불안장애는 딱히 어디가 불편한지 모른다.

불편하고 몸이 아픈데, 규정짓기가 어렵다.

그냥 몸살 기운이라든가, 두통, 안통, 어지러움, 구역감 같은 게 어그러져 있다.

논에 대충 쌓아 엮어 놓은 볏짚처럼 말이다.

'불안과 통증이 한 뭉치로 오면, 그래 왔구나'까지가 끝이었다.


스트레스가 극심한 큰 사건 때문에 불안이 심해지는 걸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다.

일반인은 목이 아프면 스트레칭을 하고, 온열 찜질이라도 할 일이지만,

'불안장애 환자는 목이 아프면 그냥 아프구나'에서 생각이 끝난다.

구체적인 구분을 잘하지 못한다.


일반인은 속이 불편하면 소화 못 시키는 음식을 먹었을 확률이 높겠지만,

불안장애 환자는 딱히 소화가 힘들 음식을 먹지 않아도 속이 갑자기 불편하다.

어떨 땐 빈속인데도 갑자기 메슥거리고 오심이 올라온다.

그렇다고 위염도 아니다.


깜박하고 약을 안 먹는 날도 있지만,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고, 머리 위가 빙빙 돌기도 하고, 시야가 흐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불안장애나 공황장애 환자라면 운전을 피하길 권유하고 싶다.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고, 순간적인 판단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왜 불편한지 모르는 것은 슬픈 일이구나.

마치 나의 감각 일부를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다.

아픈데 왜 아픈지 모르고, 의욕이 없는데 왜 의욕이 없는지 모르는 삶.

그리고 이유를 몰라 답답한데, 내가 답답한지도 모른다.

그냥 정신 반을 어디다 맡겨 두고 온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불안이 심할 때는 딱히 뭘 해서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약을 먹여 신경계를 누그러뜨리면 잠으로 이어진다.

또 잠들지 않으면 폭주하는 기관차가 된다.

온갖 신경들이 날뛰고 나면 죽기 직전 목마른 화분처럼 시들어 버린다.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욕구, 불편함을 깨닫는 일은

불안장애 환자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오늘 나의 깨달음은 충분히 희망적인 신호였다.

집 나간 정신이 들어오고 있구나 싶어졌다.


그래서 목각인형 같은 몸을 위해 정말 오랜만에 요가를 했다.

온몸에 늘어나고, 당겨져 있던 근육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오히려 그 통증이 즐거웠다.

그렇다고 통증을 즐기고 하는 뭐~ 그런 변태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역시 나이 들면 삼겹살 말고, 운동으로 기름칠을 해야 한다.

입보다는 몸으로 익히는 것에 기쁨이 훨씬 오래가고 몸에도 좋으니 말이다.


몸을 슬슬 풀고 나니 상쾌한 기분에 밖을 내다봤다.

하얀 눈이 나무 위에도, 잔디 위에도 쌓여 있었다.

이런 날씨엔 아이 데리고 스키장이라도 한번 가줘야 하는데.

이젠 보드도 갈킬 때가 되었는데, 엄마가 비리비리해서 참 미안하다.

한참 데리고 많이 다닐 나이인데, 2년을 이렇게 보내다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불안장애는 그런 것 같다.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없어,

나를 잠시 어디에 맡겨두고 오는 일 같다.

짐이 많아 무거우면 한꺼번에 다 들고 나서지 않듯이 말이다.


이제는 차즘 재워둔 나를 깨워 데리고 와야겠다.

나의 눈 속에 새싹들이 움트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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