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1.6/금)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2023년 벌써 여섯째 날이다. 넷째 날은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을 했었다. 셋째 날은 아이 졸업식 준비를 하고, 넷째 날은 졸업식을 치렀다. 정신력으로 움직여서 그런가 어제저녁은 온몸이 녹초가 되어 버렸다.


어젠 약이 떨어졌는데도 부러 병원에 가지 않았다. 평소 잘 붓는 체질이 아닌데 무릎이 아픈 이후로 온몸이 탱탱 부어 버렸다.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잘 버텨 다행이다.


졸업이 곧 방학의 시작인지라 먹을 것도 수시로 해놔야 하고 어제도 쉴 세 없는 하루였다. 급성장기라 그런다 돌아서면 배고프고 돌아서면 배고프다고 한다. 하루에 네다섯 끼를 먹고도 간식도 꾸준히 먹는 걸 보면 어디로 다 들어가나 싶어 신기하다.


졸업식 전날 밤새워 아이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쓸 때는 힘들었는데 쓰고 나니 좋았다. 장수가 많아서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결국 7장을 다 드렸다. 졸업식날 아침 출력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았다. 어두운 방에서 핸드폰으로 써서 폰트 설정이 잘 못 되었다. 퇴직하셔도 볼 수 있는 폰트 크기였다. 그래도 주저리주저리 1년의 마음을 담고 나니 내내 뿌듯하다. 나의 몇 시간이 선생님이 아이를 보살펴 주신 1년의 시간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오늘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어제 하루종일 너무 정신없이 일이 마무리되어서 이제야 답장드립니다. 편지 잘 읽어보았습니다. 윤호 통해서 뿐 아니라 어머니 통해서 윤호 이야기를 들으니 새롭고 또 저도 몰랐던 것도 있어 감동입니다.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연락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제자로 윤호를 만날 수 있게끔 잘 키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문자를 읽는데 나도 몰래 눈시울이 붉어졌다. 졸업이 실감 나서 일까, 이별이 아쉬워서일까. 나도 모르겠다. ‘그래, 마음은 표현하는 거지’라며 편지드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해가 뜨기 전 새벽부터 집 나간 탕아에게 연락이 왔다. 동생이 연말부터 어제 새벽까지 잠수를 타고 있어 내심 걱정이 되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카톡이 새해 선물 같았다. 동생은 잠수 타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힘들어서 잠수를 탄다고 하니, 더 걱정이었다. 안 좋은 생각을 하면 어쩌나, 이렇게 일 년이 지나면 어쩌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열흘 내외로 돌아왔으니 되었다. 나는 잠수를 잘 타는 사람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 잠수 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 투덜이보다는 동굴에 들어가서 삭이고 나오는 게 좋은 줄 알았는데, 곁에서 지켜보니 투덜이가 나은 것 같다. 안 보이면 더 걱정되는데, 연락해서 자꾸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했다. 동생이 나에게 역지사지를 알려준 셈이다. 돌아왔으니 되었고, 언니보다 잠수 기간이 짧아서 고마웠다.


올해는 파이팅이 넘치는 해인가 보다. 1월 1일부터 아빠와 아빠를 돌보고 있던 작은 언니와의 스파크가 일었다. 지칠 대로 지친 언니는 아빠일에 관여 안 하다고 언니한테 연락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단톡방을 나갔다. 큰언니도 떠나고, 작은언니도 떠났다. 난 아프고, 이제 아빠의 전담 보호자는 본의 아니게 동생 몫이 되었다. 아빠도 화가 나셨는지 전화를 받지 않으시고, 하루종일 하던 전화도 하지 않으신다. 우리 가족은 이걸 평생 돌아가며 반복하고 있으니 다들 지칠 만도 하다. 아빠를 내가 사는 동네로 모셔와야 할지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된다. 동생에게 말했다. 못하겠으면 언니한테 넘기라고 말이다. 동생이 아빠를 맡겠다곤 안 했으니 내 순위가 보다 빨리 올 수도 있겠다. 그나마 딸이라도 많이 낳으셔서 정말 다행이다. 한 명이었으면 어쩔 뻔하셨을까. 엄마가 이래서 많이 낳으시고 돌아가셨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제 6일째인데 벌써 다사다난해진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난 평정심을 잘 유지하고 있다. 불안장애를 치료하다 보니 몸이 배우는 게 있다. 살기 위한 신경회로가 생성되는 느낌이다. 어쩌면 약이 이렇게 해줬을지도 모르겠다. 점점 상황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감정 없는 마네킹처럼 ‘음~’ 이렇게 지켜보게 된다. 그래 인생 뭐 있겠는가. 그리 뻣뻣할 필요도, 갈대 같을 필요도 없지. 그저 파도면 파도 데로, 바람이면 바람인 데로 흐르며 사는 것이지. 올해는 왠지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다. 뭔가 백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일기를 쓰다 보면 필력도 늘었으면 좋겠다.


일상이 연상의 꼬리가 되어 쭉쭉 쭉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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