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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3.17/금)

어느 공황장애,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우리의 이주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사 중이라 생각한다. 짐들이 제 자리를 못 찾고 있으니 이사 중이 맞다.


몸이 힘드니 밥 하는 일 또한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뭘 먹고 지냈는지 알 수 없게 된 지 벌써 10일이 되었다. 정리하는데 한 달은 걸릴 거라는 나의 입방정이 현실로 되어 가고 있다. 나의 시크릿은 영통하다.


<노동 동원 1-에어컨 설치의 건>


기존에는 에어컨 철거를 포장이사 업체에서 해줬다. 이전 설치에는 위니아를 불렀다. 단점은 이사를 할 때마다 냉매를 새로 충전해야 하고, 동동 구리 연장선을 새로 사서 설치해야 했다. 내 기억에는 동동구리 선이 길어질 때마다 가격이 상당히 비쌌었다. 아마 이사시마다 에어컨 설치에만 40~50만 원 들었던 걸로 기억난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편이 지인분께 에어컨 탈부착 실외기(냉매 잠그기) 기술을 배워왔다. 남편은 멋지게도 정말로 이사 전 에어컨 철거를 혼자서 해냈다.


문제는 이사한 집이었다. 실외기를 밖에 설치할 수가 없었다. 외벽을 장식한 우드 패널이 약해 보였다. 그러면 실외기를 실내에 두어야 하는데 실내에 두면 외관상 보기가 안 좋았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세탁기 앵글을 맞췄다. 문제는 그분의 실축이 오류인지 실외기 보다 앵글 길이가 짧다. 밑에는 세탁기 건조기를 두고 위에는 실외기를 올리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우리는 둘이서 실외기를 들고 생쇼를 했다. 나는 40년 전 얼마 먹지도 못한 젖 먹던 힘까지 불러와야 했다. 온 힘을 쏟아부었지만 , 그 결과는 처참했다. 길이 실패, 각도 실패로 실외기를 들고 십분 넘게 애만 쓰다 결국 내려놓았다.


남편은 키도 크고 건장하니 버틸만했다 한다. 근데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다음날부터 눕지도 앉지도 못할 근육통이 찾아왔다. 소염제와 근육이완제를 달고 살아야 했다. 손목, 어깨, 목, 등까지 근육들이 썽을 내고 온돌처럼 어깨가 뜨끈뜨끈 해졌다.

결국은 건조기를 반대편 아래에 놓고, 실외기는 놓기로 한쪽 아래쪽에 놓았다. (헤헤) 진즉 이렇게 할 걸 머리가 따라 주지 않아서 또 엄한 몸만 고생을 시켰다. 이렇게 에어컨 냉매제와 설치비, 동동구리 연장선비를 아끼고 나의 어깨와 근육들을 내주었다.


<노동 동원 2-포장이사의 오류>


이삿짐 업체는 로젠으로 했다. 제일 비쌌는데 견적 오신 분이 마음에 들었다. 50대 아저씨가 활기차고 적극적이셨다. 날티도 안 나고, 죽는소리도 안 해서 좋았다.


견적서에는 6톤이라고 적혀 있는데 5톤 차 한 대가 왔다. 차량 온 것과 견적량이 다르니 남편이 묻는다.


“나가서 싸울까?”

“아냐, 됐어”

“자기가 여기가 맘에 든다며, 좋게 가자”

“차 오자마자 싸워서 좋을게 뭐야, 비싼 값을 하겠지”

“좋게 가자 여보, 나 싸울 기운도 없어”

“알았어, 아 처음부터 맘에 안 드네”

“참아 자기가”


짐을 다 실으니 안이 여유롭게 남았다. 원래 5톤 차에 3.5톤이 실린다고 하니 우리 짐은 3톤이 조금 못 되는 것 같다. 나는 옷과 아이용품, 중요 용품은 내가 미리 싸 놓고 푸는 것도 내가 한다. 실제로는 반포장이사인 셈이다. 아저씨들은 ‘이 집은 할 일이 없네’하며 좋아하셨다. 듣고 있는 나도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빨리 끝나면 서로 좋은 일이니 싸놓길 잘했다 싶었다.


여기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첫째는 이사 온 집은 붙박이장이 아니었다. 장롱을 주문했는데 이삿날과 배송일이 맞지 않았다. 그러니 싸놓은 옷일지라도 박스체 장롱에 넣어주는 것과 방에 쌓아 놓는 일은 다른 일이었다.


모든 짐은 방에 고스란히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사진까지 찍어 그대로 풀어주는 업체도 있던데 이번 포장이사는 달랐다. 세 방의 책이 서로의 방으로 뒤 썩이기 시작했다. 포장한 박스가 어느 방 박스였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열어서 책이면 아무 방으로나 책으로, 열어서 놀 자리 있는 곳에 아무 데나. 옷이야 가구가 없어 그러는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둘째는 포장이사 오신 분들 연세가 너무 많았다. 족히 외관상 일흔은 넘어 보이셨다. 어르신들이 끙끙거리며 애를 쓰시는데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주방 할머니는 밥그릇을 화장실에도 놓고, 화장실 청소용품을 싱크대 안에도 풀어놨다. 하물면 뚫어뻥은 방에 와있었다. 주방 짐을 쌓을 때도 힘이 드신 지 앓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내가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쳐다보기도 민망했다. 시어머니 일 시키는 나쁜 며느리가 된 느낌이랄까. 어찌나 끙끙거리며 탁탁 내려놓으시는지 그릇 다 깨지는지 알고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냉장고 음식은 박스에 넣었고 냉동식품은 육류와 어류만 아이스박스에 넣어 주었다. 그것도 아이스팩 하나 없이 말이다.


그 연세에 이사일을 나올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니 새파란 내가 다시 하자 싶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냉동식품은 다 녹아 버리고 작년에 산 냉장고는 다 찍히고, 아일랜드 식탁 아래면은 나무색이 나올 정도로 눌리고 깨졌다. (ㅎㅎㅎ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싱크대 크기는 별차이 없었는데 모든 주방용품은 티브이장 안이고 어디고 막 넣기 바빴다. 젊은 사람들 같으면 뭐라 하겠건만 인상은 며느리 쫓아낼 것 같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시고 일을 하시는데.. ‘아놔 역였구나’ 싶었다.


이분들은 목소리도 컸다. 서로 반은 싸우듯이 말을 하시고, 주방 할머니는 바락 바락 소리를 지르시며 대치하셨다. 팀원들끼리 장단이 안 맞으니 참 눈치가 보였다.


이사하는 날은 부딪히고 싶지 않아 방구석으로 가서 잠시 앉았다. 그다음부터 기억이 없다. 눈을 뜨니 점심때가 지났고 이사가 끝나 있었다. 그사이 나는 두 시간 정도 실신하듯 잠들었었다. 과로였나 보다. 일어나 보니 짐은 모두 거실과 방바닥 주방에 발 디딜 틈 없이 내려져 있었다. (흐흐흑) 눈을 뜨자마자 다시 실신할 뻔했다.


그로부터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고 있다. 하루에 반은 찌든 때를 닦고 하루에 반은 가구위치를 옮긴다. 이틀에 한 번은 옮긴 가구에 짐을 정리하다 쓰러진다.


이제는 생전 안 시켜본 반찬도 다 시켜 먹고 숨만 붙이기 바쁘다. 밥 하기도 힘든 날은 삼각김밥과 컵라면 배민에 도움을 받고, 조금 일어난 날는 국에 반찬을 겨우 내놓는다. 남편은 남편대로 몸살이나 다 죽어가고 나는 나대로 체력이 고갈된 상태이다. 애기는 중학교를 입학해 그사이 학급회장이 되고, 챙겨줘야 할게 많아지고 있다. 정말 정신없는 3월을 하루씩 마킹하고 있다.


이제 가구는 어느 정도 위치를 잡아가지만 아직도 애기방 책장이 않았다. ‘아, 정말 배송이 20일 넘게 걸리는 데가 어디 있는가’


전에 살던 분이 싱글남이 어서 그런가 주부인 내 눈에는 천장까지 닦아야 할 지경이다. 거미님이 안녕하고 인사를 하신다. 이전 입주자였나 본데, 베란다를 열고 나뭇가지로 보내드려야겠다.


아… 이 많은 도미노를 언제 다 쌓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필코 이번달 안에는 끝내리라.


전에 살던 분이 작가셨다고 한다. 이 집은 계속해서 작가들만 사는 집이었다고 해서 슬쩍 기분이 좋았다. 전에 살던 분의 기운이 배어 있으니 나에게도 영감님이 자주 출몰하시기를 바라본다.


그전 살던 분은 겨울 같은 분이었다. 키도 크고 잘생긴 독신남에 잉크냄새 물씬 나는 헝클어진 머리였다. 집도 묵고 그분도 묵어 보였다. 집도 그분도 겨울향이 그득 배인듯했다.


나는 5월에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겨울과 잘 맞는다. 겨우내 나를 품고 있다가 마지막 힘으로 나를 밀어내었던 게 아닌가. 그러니 겨울은 침묵 속에서 사랑을 맺었고 봄은 대지의 기운으로 영근 사랑을 꽃피운다.


창가마다 목련 나뭇가지가 닿는다. 봉오리가 맺혀 있으니 좀 있으면 꽃이 필테다. 이 집은 봄을 마시고 여름을 태우기 좋은 집이다. 내가 이 집도 봄처럼 바꿔놔야겠다.


그래서 사계절이 아름다운 집이 되게 나의 냄새로 바꿔 놓을 테다.


이 집에 와서 작약이 다섯 그루나 새싹이 올라왔다.


나의 봄이 벌써 시작되었다.


풋풋한 나의 봄이 당신에게도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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