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3.27/월)
어느 공황장애,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다른 때보단 잘 잔 밤이다. 두 시간씩 끊어자던 잠을 네 시간은 푹 이어 잤다. 잠만 조금 이어자도 이렇게 개운하구나.
밤의 뿌리가 깊은 시간 꿈에서 깨어났다. 오늘도 어린 동생을 잃어버리는 꿈을 꿨다. 회사에서 전전긍긍하는 꿈이었다. 그날따라 내가 없으면 안 되는 날이라 상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언니들에게 계속 전화를 했다. 꿈에서 언니들은 그렇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야속하고 애가 타 죽는 줄 알았다. 결국 통화 끝에 동생을 찾았다. 어린 동생이 굶고 있을까 봐 발을 동동 구르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 직원들은 군대 가는 직원 송별회가 있으니 회식을 꼭 하고 가라고 했다. 꿈에서도 가슴이 타들어 가는 줄 알았다. 언니 마음이 결혼하는 널 보낼 준비를 하고 있나 보다. 더없이 기쁘고 축하하면서도 다른 한 편은 걱정과 염려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툭하면 동생을 잃어버리는 꿈을 꾼다. 잘 살리라 믿는다. 언니는 항상 고사리 같은 너의 손을 잡고 있으니.
밤이 땅 위로 거의 내려왔다. 걷히기 전까지는 나의 시간이다. 요런 반짝 시간이 참 귀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요람 속의 나이다. 한 시간 안에 푹 꺼져서 다시 잠들고 싶지 않다. 부디 점점 이런 시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나는 요즘 수명이 다 된 배터리처럼 온오프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수명이 다하기엔 나는 아직 젊은데 말이다. 몸의 어느 부분의 접지가 문제일 수도 있다. 지우개로 잘 닦아주면 다시 살아날 텐데… 문제는 어느 부분이 접지인지 아직 찾지 못했다. 나의 몸을 내가 알기란 이리도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인간은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꾸려가는구나.
이 새벽에 배가 고프다. 배고픈 느낌이 상쾌하고 좋다. 배가 등가죽에 붙었으면 좋겠다. 속이 빈 느낌이 왠지 통증들까지도 비워내는 느낌이라 후련하다.
내가 일어난 걸 아는지 별이가 문 앞에서 ‘냐옹’거린다. 문을 열라는 소리다. 여태껏 소파에서 혼자 자다 보니 외로운가 보다. 일정시간 이상 떨어져 있지 못하는 걸 보면 말이다. 별이는 고맙게도 이불 밑에다 토를 해주었다. 하필 이 새벽 털을 개우고 싶은 널 어쩌면 좋니.
어젠 잠시 신애라의 신박한 정리를 봤다. 정리는 욕망과 필요사이를 구별하는 일이었다. 부단 살림 정리만 그럴까? 하루의 시간도, 관계의 사선들도 모든 것이 욕망과 필요 사이의 엉킴이다. 마치 집을 타고 올라가는 덩굴나무처럼 삶은 한데 엮어 풀기 어렵다. 내 집의 담장만이라도 잘 정돈 되어 있다면 그 집의 수명은 길어질 텐데 말이다. 쉽게 겉어 낼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 담장이 날 보호한다고 덮게 두는 사람도 있으리라. 나는 어느 쪽일까? 나는 겉어 내는 쪽 같은데도 등나무의 생명력이 매우 강한듯하다. 싹 다 잘라 낼 것이다. 느그들은 날 타지 말그라.
어제는 목련이 한껏 꽃잎을 더 열고 있었다. 만개하진 않았지만 우리 집을 감싸고 있는 나무들도 이제야 봄햇살이 충만해지나 보다.
너의 화분이 가득차면 나에게도 한 껏 뿌려 줄래?
신데렐라에게 호박 마차를 만들어 주는 마법사처럼 말이야. 나도 좀 너의 봄에 같이 취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