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6.8-2/목)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우울증_반불통의 티키타카>
오늘은 오전부터 정신과 진료를 다녀왔습니다. 늘 그렇듯 참 가기 싫습니다.
저의 정신과 샘은 저와 티키타카가 좀 어정쩡하시거든요. 환자도 많고 매일 저 같은 환자를 만나기 때문이겠죠.
다소 설명이 자동적으로 축소된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답답한 면이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주로 상담이라기보다는 혼나고 오는 기분이 들거든요. 어쩌겠어요. 나조차도 나와 소통이 잘 안 되는데 그럴 수도 있지요.
“안녕하세요, 왜 일찍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약이 떨어져서요”
“약이 왜 벌써 떨어졌어요?”
“선생님께서 증상이 심하면 더러 더 먹기도 하고 덜 먹기도 하라고 하셨잖아요 “
“지금도 매우 센데 그 걸 다 먹었다고요?”
“아뇨, 그건 아니고 분홍약은 많이 남았고요, 흰색약만 다 먹었습니다”
“분홍약은 하루 세 번 주셨는데요. 너무 깔아져요. 그래서 많이 먹는 날도 두 번밖에 못 먹습니다 “
“흰색약은 우울증 약인데 왜 다 드셨어요? “
“우울증이 더 심해져서요”
“아~ 에효”
“아니, 어떠셨는데요”
“한 일주일은 삶의 모든 질문이 꿈에서까지 쫓아다녔고요. 죽고 싶다는 아니었는데, 무로 돌아가면 좋겠다. 모든 것은 순환이다 “
“그리곤 말만 하면 눈물이 나고요. 눈이 붓지 않은 날이 없게 울었습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 통증에 과호흡에, 식욕부진에 체기에, 두통에 온몸 통증에, 전주는 정말 지옥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
“그리고 분홍색 약을 먹으면 정신을 못 차리니 좀비가 되고요. 그래서 반알씩 먹었더니, 그건 또 약하고요 “
“다른 증상들이 기억할 수도 없이 복합적으로 올라오니깐, 흰색약은 저녁에 한 번만 먹게 주셨지만 더 먹었지요”
“그걸 먹으면 좀 더 진정이 되더라고요”
“아, 그건 아니에요”
“뭔가 잘 못 알고 계신 거예요”
“어떤 걸요?”
“분홍색약은 안정제라고 했죠? 깔아지는 게 맞아요. 깔아지라고 드리는 거예요”
“지금 말씀하신 증상 대부분은 불안장애, 공황장애예요”
“과호흡, 심장통증 다 공황장애예요”
“그러면 안정제를 드시는 게 맞아요”
“지금 머리가 아픈데 소화제를 드신 것과 같아요”
“흰색약은 우울증 약이라고 했죠? 이 약은 지금 먹으면 효과가 이 주 후에 나타납니다”
“그러니 지금의 우울증은 이 주 전에 먹은 약이 담당하는 거예요”
“우울증이 심하니 우울증 약을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셨나 본데요”
“우울증이 심하면 강한 안정제를 드셔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다운돼서 다른 증상들도 릴랙스 되는 거죠”
“즉시 효과가 나오는 건 분홍색 약이에요”
“그러니 분홍색 약을 잘 복용하세요”
“선생님 그럼 한 알 먹으면 쓰러지고 반알 먹으면 부족한데, 그럼 어떻게요?”
“그럼 반에 반알 드시면 되죠?”
“아~”
“그런가요?”
“그럼 선생님 복용 시간 간격은요?
“다음 복용까지 두 시간 후라든가?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없어요”
“하루 복용 양만 넘지 않으시면 되니깐 반알씩 반에 반알씩 좋아지실 때까지 조절해서 드세요”
“아시겠죠?”
“일찍 오지 마시고요”
“약 중복처방하면 제가 곤란합니다”
“선생님 두통이 너무 심해요”
“정신과에서는 두통약 처방 못해주시나요?”
“무음”
“타이레놀은 효과가 없습니다”
“다른 진통제로요”
“저희도 타이레놀 처방 밖에 안 돼요”
“불안장애, 우울증이 원래 두통이 심한 병이에요.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속마음)
“아놔, 그런 말은 누가 못해”
“신경 쓸 일이 생기시면 ‘아 몰라, 될 데로 돼라, 다 그래봤자지. 이렇게 놓아버리세요. 물론 여러 상황이 힘든 상황이시지만 , 어쩌겠어요. 이미 벌어진 일이고, 환자분이 해결할 일도 아니고, 환자분 잘못도 아니잖아요 “
“다 될 데로 되라고 내버려 두세요. 다 어떻게든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속마음)
“어, 뭐지.. 요건 쫌 맘에 드는 말씀이여, 그려 다 될 데로 되라고 벗어던지는겨. 인생 뭐 있간. 내 등짝이 한반도도 아니고 다 짊어지고 댕기기엔 느므 적잖여“
“넵.. 알겠습니다”
“네, 이 주 후에 뵐게요”
“네 안녕히 계세요”
아놔~
과호흡이 공황장애라는 걸 너무 늦게 알려 주신 거 아닌가요.
정신과 1년을 다니고서야 말씀해 주시다니요.
선상님~
나으 담당 선상님~
정말 너무 늦게 알려 주시는 거 아닙니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