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6.28-1/수)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이 글은 매우 우울합니다. 정서가 미약하신 분들은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자살을 정당화 시키며 설득하려고 하는 말들이 아니다. 내가 겪어본 감정의 선들을 기록하는 것 뿐이다.


<우울증_우울증은 삶의 모든 이유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창문을 열고 잤더니 목이 칼칼하다. 찢어지는 새소리에 잠이 깼다. 무슨 새소리가 비명에 가까울까? 너도 참 남모르게 미움 좀 받겠구나. 5시에 주택가에서 반가워할 목소리는 아닌데 말이다.


정신과를 다닌 지 1년이 되어간다. 우울증 증상이 나타난 건 6개월째이다. 다른 불안장애와 공황장애 때문인지 우울증이 급속도록 악화 되었다.


나는 모래사장을 걷듯 나의 발자국을 선명히 남길 수 있을지 알았다.


이땐 모르니깐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마치 결혼처럼 말이다. 모르면 용감해지고 겁이 없지 않은가.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알았고 긍정적일 수 있었다.


나는 슬슬 우울증이 두렵기 시작한다.


우울증이란 삶에 경계가 무너지는 일이다.

이성과 지각의 혼돈이 오고 나를 잃어버리는 병이다.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나를 잃지 않으려고 지독히도 나를 붙잡으려 한다. 기록하는 이유도 그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나의 일기에 끝은 어떻게 끝날지

나도 모르겠다.


매일 조금씩 사라지는 나를 보는 게 두렵다.


나의 삶은 수채화처럼 흐려지고 테두리가 옅어지고 있다. 삶과 죽음의 차이를 혼돈하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이승과 저승의 다리에 서서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본다. 때론 두려움으로, 때론 의연함으로 말이다.


나를 잃는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처음엔 하루가 사라졌다.

그다음부턴 나를 계속해서 의심하게 된다.

이건 가짜 우울증이 아닐까,

진짜가 아닐지도 몰라.

나는 관심병이 아닐까.

나는 미쳐가는 게 아닐까.


그러다 점점 왜 병원을 다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어떤 증상이 있었는지도 희미해진다. 다 가짜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현실이 아닌 느낌이 계속해서 날 병들게 한다.


나는 지금 정말 두렵다. 이젠 나의 소중한 애기도 잊혀지는 느낌이다. 내 옆에서 잠들고 있고, 만져지는데도 말이다. 내 피 같은 애기를..


나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내 생각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고, 내 몸도 점점 내 맘 데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내 의식의 주인은 내가 아닌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의지의 문제로 보이겠지만 이건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이다. 나는 점점 내가 아닌 게 되어 가고 있다.


문득문득 무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날 보면 섬뜩하게 이성이 돌아온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들이 혼돈의 숲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이 나의 삶의 지각은 무너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기억할 순 있지만 경계가 허물어지고 희미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잊게 되고, 그들을 놓게 된다. 나의 생명이 붉은 물감처럼 흐르지만 또 그렇게 흐려지고 있다. 점점 사랑하는 이들을 놓을 준비를 시키는 것 같다.


이건 뭐랄까,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치 남의 일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점점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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