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8.29/화)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우울증_당신은 나에겐 산삼이에요>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왔다. 이웃새가 음치인건 참 곤란한 일이다. 아침만 시끄러운 게 아니라 밤도 시끄럽다.
나름 그 댁 가정사는 모르겠으나 어젯밤은 대단했다. 고양이가 그 댁 새끼를 건드나 싶어 걱정이 되어 몇 시간을 좌불안석이었다. 모르면 모를까 그리 목 놓아 우는데도 밤 12시 넘어 참 어찌할 바가 없었다.
나는 치킨을 먹으며 야생 고양이가 새를 먹는 건 왜 불편할까? 이상한 논리다. 나는 되고 너는 안 되는 무슨 그런 못된 심리 같다. 집에서 사는 고양이와 야생에서 사는 사는 고양이의 예쁨이나 소중함이 다르지 않을터.. 생명의 행동을 차별하게 되다니.
나도 집사로서 나쁜 고양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까치의 새털이 빠져 있거나, 뼈를 본 날은 여전히 불편하다.
따뜻한 이야기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세상에 잡초는 없습니다'라는 글이었는데 참 가슴에 와닿는 글이었다.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인 강병화 교수님의 1984년부터 전국의 산과 들을 다니며 야생 들풀을 채집했다고 한다. 그 결과 100과 1,220 초종에 속하는 4,439종을 수집해 왔으며, 1991년에 야생 초본 식물자원 종자은행을 설립하셨다고 했다. 이때 인터뷰를 하셨던 이야기이다.
"17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 세상에 '잡초'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그게 바로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그 역시 잡초가 되며
산삼이라 해도 엉뚱한데 나면 잡초가 되는 것입니다. 잡초란 단지 뿌리를 내린 곳이 다를 뿐입니다.“
뿌리를 내린 곳이 다르면 산삼도 잡초가 되고 잡초도 산삼이 된다.
야생 고양이도 야생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그랬겠는가. 새와 고양이의 관계는 자연의 자연스러운 먹이사슬 관계이니 내가 가타부타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난 왜 이런 게 이렇게 불편한지 모르겠다. 이기주의가 맞다.
고양이도 사람도 다 같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나는 생명 없고, 태어나고 싶은 곳에 태어 날 수 있는 생명 없다. 우울증을 앓으며 알게 된 게 있는데 우리는 태어나면서 정말 모든 의무를 다 했다. 태어나기 위해 존재한 게 맞는 거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태어남을 연속하기 위해 살아간다. 연속한다는 게 여기서 가장 핵심이다.
삶은 늘 반복을 연속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나도, 당신도.
누군가는 당신을 아끼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내가 당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이 그냥이란 단어로 그 모든 상황을 지나가길 바란다.
나는 당신이 들에 태어난 산삼이라 반드시 믿으니 말이다.
그러니 오늘도 내 이웃 음치 새가 슬피 울어도, 너무 노래를 못해도 또 이해하고 참아줘야겠다.
뭐 딱히 대화가 되는 사이도 사실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