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사치스러운 하루

흰뺨검둥오리

by 그레텔 그림



“일과를 마치고 읽던 소설책을 펼쳐 마저 읽는 일.

저녁 식사 후 반려인과 따뜻한 차를 나눠 마시며 다리를 쭉 뻗는 일.

주말에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몇 시간 동안 음악을 듣는 일.

약속을 앞두고 마음에 드는 맛집을 검색하는 일.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면서 창밖 햇살을 바라보는 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모여 앉아 큰 소리로 웃는 일.

그리고 어떤 브랜드의 청소기가 쓸만한지 서로에게 묻는 일.

드라마 시리즈를 다시 몰아보며 주말 오후를 탕진하는 일.

호숫가에서 흰뺨검둥오리의 주황색 발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일.

나 자신과 약속한 숙제에 몰입하려고 다른 상황들에 잠시 무심해져야 하는 일.


사소하고 당연한 일상이 대단한 사치가 되는 나날이 있다.”



작년 초겨울, 그러니까 2024년 12월 초에 나는 이렇게 썼다.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았던 절망감은, 완전히는 아니어도, 기억의 영역으로 스며 들어갔다. 일상이라는 말에 우리는 무엇을 담아 왔을까. 어쩌다 보니 진부해진 삶에서 살아감의 의미와 동력을 잃고 그것이 끝내 병이 되는 이야기가 흔해 빠진 시대다. 그럼에도 이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권태로운 일상이 대단한 사치가 되고 마는 대반전을 겪었다. 다시 돌아온 12월 3일 오후, 나는 내 방의 창 옆 책상에 앉아 늦가을에 비해 한결 창백해진 초겨울 햇빛을 만끽하며 작년에 남겼던 흔적을 돌아보았다. 이 장면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너무 진부한 말인가. 그래도 괜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다행히도 나는 여전히 저 사치들을 누리고 있고 저 기록을 이어 쓰고 있다. 다시 한번 흰뺨검둥오리의 귀여운 주황색 발을 보러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우리 지난 한 해 동안 참 많은 것들을 감당하고 살아왔네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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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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