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딱따구리
좀 우스운 말 같지만 나는 내가 그린 그림들이 쌓여 짐이 되는 상황이 두렵다.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면서 이런 감정은 점점 더 선명해졌고, 캔버스를 떠나 종이로 건너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종이 그림에는 액자가 필요하고, 당연히 좋은 액자는 비싸다. 짐 문제는 조금 덜었으나 비용 문제가 발생한 셈이다. 질을 크게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과다 지출을 하지 않고, 재활용도 가능한 물건을 찾기 어려워 고민하다가 직접 만들어볼 마음을 냈다. 내 필요에 꼭 알맞은 목공방을 소개해준 다정한 지인 덕분에 가능한 결심이었다. 나의 ‘목공 생활’은 이제 두 달째에 접어들었다.
공방 주인은 여전히 청년의 기운이 활달한 중년 여성이다. 상가주택 일층에 자리한 공방은 목수의 개인 작업실이면서 동시에 여러 회원들이 함께 쓰는 공동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공간이란 대개 주인의 내면 모습을 꼭 닮아 있다고 믿는다. 끊임없이 날리는 나무 먼지와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분주함 속에서도, 공방은 특유의 정갈함을 잃지 않았다. 주인장이 오랜 시간 모았거나 직접 만들었을 목공품들은 빼곡하면서 정연했고, 각양각색의 공구들은 벽에 걸리거나 서랍에 담겨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첫날부터 공방장은 내 필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두 번째 작업일에는 꽤 근사한 액자 두 개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딱히 ‘재능’이라고 불리지 않는 재능들이 있다. 공방장은 자신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의 작업을 돕는 멀티플레이를 구사한다. 선생으로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저 서툰 '동료'들의 작업을 지원한다. 내 눈에 그것은 거의 초능력처럼 보인다. 중년기에 들어오고 나서 더 각별한 가치를 매기게 된 종류의 재능이기도 하다. 집안의 장녀로서 무난한 전공으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다녔던 30대의 어느 날, 그는 마트에서 사은품으로 드릴을 받았고 그것이 시작이 되었다고 했다. 숨은 재능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드라마가 아닌가! 쓰이기를 기다리며 벽에 걸려 있는 든든한 공구들을 둘러보다가 그것들 역시 주인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날이 추워지면서 산책 시간이 줄어서인지 일상의 좋음에 다시 둔감해지고 있다. 새로운 일상의 배경이 되어가는 목공방에 대해 쓰기로 했다. 나에게 쓰기란 곧 미끄러져 갈 생각과 감정을 꼭꼭 눌러 기억으로 각인하는 일이니까. 뭉툭한 단어들을 여러 번 고쳐 쓰면서 감정을 다듬는 일은 다행히도 꽤 즐겁다. 이 글에 붙여 어떤 새의 그림을 그릴까 생각하다가 공원에서 나무줄기를 야무지게 쪼던 오색딱따구리를 떠올리고 피식 웃음이 났다. 공방에 대해 글을 쓰고 딱따구리 그림을 곁들이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공방장은 어린 시절 TV 만화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빨간머리 딱따구리처럼 하하하하하, 쾌활하게 웃었다.
#내 손가락 위의 새
#토요 그림에세이
#오색딱따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