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원앙 그리고 사랑

원앙

by 그레텔 그림




저녁 6시, 버스에서 내리니 이미 밤이다. 들이마신 저녁 공기는 몸속을 파고 들어왔고, 그 차가움이 싫기는커녕 제철 선물 같아 마냥 반갑다. 어둠이 깊고 투명해진 만큼 상가의 불빛들은 영롱해졌다. 내 몸은 반사적으로 집과 반대 방향에 있는 붕어빵 가게를 향했다. 줄 선 사람들이 보였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름 애호가로서 맛본 붕어빵들을 평가하게 되는데, 이 가게는 최상은 아니어도 상급은 된다. 겉바속촉의 조화, 반죽의 밀도, 팥소의 양과 당도. 최상의 조건에 차가운 공기는 필수다. 하지만 그해 첫 붕어빵은 등급을 따질 필요 없이 그저 좋다. 일 년 만에 돌아온 뜨거운 행복감을 후후 불고 씹어 삼켰다.



붕어빵 봉지 위에 인쇄된 붕어가 의외의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사랑해,라고. 붕어빵은 달콤했으나 그 사랑은 불신했다. ‘사랑’은 대개 너무 섣부른 종착지이나, 대체할 말을 찾기는 어려운 단어다. 나는 너무 절절한 남녀 간 로맨스에 거부 반응이 있다. 그런 이야기들은 오히려 ‘사랑’을 비좁고 단단하게 제한한다는 기분이 든다. 이어서 또 하나의 당황스러운 사랑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때 유행했던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멘트. 그야말로 ‘사랑’을 대놓고 쓰레기로 만든 사례가 아니었나. 그러나 이 진심 없는 고백을 듣고 싶어 용건 없이 전화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다고, 그래서 결국 그 인사를 없애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인간 심리란 참 다양하고도 기묘한 것이구나 싶었다.



제철을 알려주는 것은 간식만이 아니다. 호수에 제철 새들이 하나 둘 돌아왔다. 반가운 원앙 무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번식기 깃으로 치장한 수컷들의 자태는 산책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시선을 빼앗는다. 그들은 인형 같이 어여쁜 머리를 까딱거리며 깃털을 다듬는다. 우리가 오래 간직해 온 또 하나의 ‘사랑’이 떠올랐다. 부부의 백년해로, 즉 변치 않는 사랑의 상징이 되어 인간의 특별 애정을 받아온 이 새들. 사실 수컷은 암컷 여러 마리와 동시에 짝짓기를 하며, 암컷들은 혹독한 독박 육아를 도맡는다고 한다. 사랑에 이중으로 뒤통수 맞았다.



좋다. 의심과 배신 앞에서는 질문을 바꾸는 수밖에. 그들이나 우리 말고 나에게 묻자. 사랑이라는 말에 무엇을 담아 왔느냐고, 무엇을 담고자 하느냐고. 던져진 질문은 내 안의 한편에서 구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 답이 모습을 갖출 때까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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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 위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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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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