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여새
“네가 그렇게 따뜻한 사람은 아니잖아.”
친구가 묻어두었던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그 말은 나무람도 아니었고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며칠 동안 내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걸리적거렸다. 몇 해 전이었다면 ‘맞아, 내가 좀 그래’하고 무심하게 넘겼을 말이었다. 돌아보니 함께 살던 시절, 한 살 터울 동생은 자주 간식을 사 들고 귀가했지만 나는 대개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생일과 기념일을 챙기는 일은 늘 숙제처럼 부담스러웠다. 특별한 이유 없이 받은 선물 앞에서는 기쁘기보다 당황했고, 그 마음을 숨기려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뭐 그러면 어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성격이 왜 이제 와서 작은 돌멩이처럼 부대끼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따뜻함으로 관계를 만드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꽤 오래전 어느 날 그림을 그리며 듣던 유튜브에서 흘러나온 이야기가 떠올랐다. 뇌과학자였던가, 의사였던가. 사이코패스를 연구하던 한 남성이 자기의 뇌 사진을 보고서 자기 자신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일찍이 어린 아들의 특성을 알아챈 부모가 적절히 도왔고,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은 타인의 반응을 관찰하며 학습했기에 중년이 되기까지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감정을 연습할 수 있다는 이야기, 누군가는 그럴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한참 뒤늦게 나를 향해 되돌아왔다. 나도 내게 부족한 따뜻함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정말 그런 게 배워질까.
인스타그램을 넘겨 보다가 양말 세일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양말은 기회만 되면 쟁여놓는 물건이다. 마음에 드는 양말을 신는 일은 혼자만의 비밀 같지만 살짝 드러날 때 오히려 더 좋은 즐거움이 되기 때문이다. 연말은 이유 없이 선물하기 좋은 때이고, 양말은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으니 취향 저격에 좀 실패해도 괜찮다. 명단을 적는다. 자매들. 오래 함께 해온 독서 모임 친구들. 요즘 다니는 목공방 사람들. 얼마 전에 만든 제철 클럽 사람들. 자주 못 본 오래된 친구들. 어떤 게 더 어울릴까 잠시 고심하며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 그렇게 한 해를 함께 보내줘서 고맙다는 묵직한 마음을 가볍게 담는 일. 연례행사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깜박 만남의 기회를 놓쳐서 아쉬운 이는 내년을 기약하면 될 테니까. 양말로 자체 발열을 연습해 본다.
#내 손가락 위의 새
#토요 그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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