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비둘기야

비둘기

by 그레텔 그림




공원으로 난 아파트 단지 출입 유리문에 선연한 하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동그라미 두 개와 옆으로 펼쳐진 유연한 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데 상상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지만 산책 내내 잔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부디 살아남았기를 기원해 줄 여지조차 없었다. 자국의 또렷함은 새가 아무런 의심 없이 빠른 속도로 날았다는 증거였을 테니까.



원래 공원 출입구에는 손으로 여닫는 나직한 문이 있었다. 어느 날 사람들은 그 문을 떼어내고 큼직한 콘크리트 문설주를 세우더니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열리는 유리문으로 바꾸었다. 우리 아파트의 가치가 너무 저평가되어 있다며 안타까워하던 부동산 중개사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유리문은 그 저평가를 해소하려는 시도의 하나였겠지. 그 후 단지 밖 사람들은 공원에 가기 위해서 긴 우회로를 감수해야 했을 테고, 단지 주변에 사는 새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의 가능성을 한 가지 더 떠안게 되었다.



나는 불만을 공적으로 표현하는 일에 서툰 사람이다. 하지만 공원에 갈 때마다 마주치는 하얀 자국은 마치 위장 속에서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처럼 부대꼈다. 아파트앱을 열었다. 먼저 우리 단지의 자연 친화적 가치를 칭찬하면서, 아이들의 생태 교육 효과까지 예상하며 적어나갔다. 그렇게 누구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으려 애쓰며 제안한 것은 조류 충돌방지 시트 시공이었다. 다음 날 짧은 답글이 달려 있었다. ‘대표회의에 전달하겠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유리문에 남은 흔적은 그대로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다. 까치보다 작은 몸이다. 몸에 비해 작은 머리. 비둘기였을까. 혹시 그 비둘기에게 짝이 있었다면, 이 추위 속에 갑자기 홀로 남겨진 건 아닐까. 구구구구구, 비둘기야. 걷는 동안 내내 멕시코 민요 <꾸꾸루꾸꾸 팔로마>가 맴돌았다. 오랫동안 들으며 좋아하기만 했던 노래였는데 처음으로 가사를 찾아보았다.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다 죽은 남자의 영혼이 비둘기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런 이유로 슬피 우는 비둘기를 달래는 노래였다.


아, 따뜻한 물처럼 스며드는 카에타누 벨로주의 고즈넉한 목소리가 필요했다.

내게도. 비둘기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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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그림에세이

#cucurrucucu paloma

#꼭 카에타누 벨로주 Caetano Veloso의 노래로 들어보세요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