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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Apr 27. 2022

네가 학교에서 비싼 생선을 먹었어


나는 급식 세대가 아니었는데 너는 급식을 먹어. 결국 도시락 관련 토크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나중에 내가 도시락 반찬 이야기라도 꺼내면 네가 꼰대라고 그러겠다.


영국에서 다니던 학교에서는 피시앤칩스, 파스타, 비프 웰링턴 따위를 먹던 네가 처음 한국에 있는 유치원에 갔을 때가 생생해. 이 유치원을 다닐까 어쩔까를 알아보려고 상담을 간 날이었어. 급식이 어떻게 나오냐고 물으니 너무나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원장선생님이 말했어.


- 저희는 절대 양식을 먹이지 않고 오로지 한식으로만, 농협에서만 싱싱한 재료를 받아서...


그동안 어머 너무 다행이네요! 라고 말하는 엄마들만 봐왔는지 내 반응에 조금 놀라신 것 같았어.


- 네?! 그럼 안 되는데.. 아이가 갑자기 무슨 나물, 무슨 국물 그렇게 주면 아예 안 먹을 텐데..


결국 네가 몇 주 동안 반찬은 하나도 먹지 않고 '밥'만 먹는다고 담임 선생님이 그러셨지. 지금은 달라. 그렇게 혹독한 식습관 변화(개선이라고는 말 못하겠다)를 겪고 지금 초등학교에서 주는 것들을 이것저것 시도해보며 먹는다고 하니까. '엄마 나 오늘 김치 한 조각 먹었어! 작은 거!'라고 말할 때도 가끔 있고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는 이틀 전에 네가 이런 말을 했어.


- 엄마 오늘 학교에서 비싼 생선을 줬어.


응? 나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뭘 보여주거나 사주거나 하면서 '이거 비싼 거야!'라고 말하는 걸 참 싫어하는 사람인데 네가 그런 말을 해서 놀랐어. 비싼 거니까 남기지 말고 먹어, 비싼 거니까 깨끗하게 입어, 이런 말 너무 이상해.


알고 보니 음식을 배식해주는 어른이 그런 말을 한 모양이야. 그 분이 선생님인지 영양사인지 그냥 봉사하는 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기준 비싼 생선인 제주산 갈치라도 준 건가.. 하면서 너한테 물어봤는데 갈치를 자주 먹어본 네가 갈치는 아니라고 하니 무슨 생선을 말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더라.


그래서 평소에 자세히 보지 않던 학교 식단표를 찾아보았어. 그 비싼 생선의 정체는... 메로였어.

영어로는 Patagonian toothfish. 농어목 남극암치과의 바닷물고기.

나는 메로를 사서 먹지는 않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 통통하고 부드럽고 기름지고. 먹기 좋은 생선이지. 그런데 몇 년 전에 그 물고기가 멸종위기종이라고 들었어. 그때부터 먹지 않게 되었지. 내가 사 먹지 않으니 너도 접했을리가 없고 너에게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먹어본 생선이 되어버린 거지.


남극 생선 ‘메로’ 씨 말리는 한국 (2017)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4041726937630


남획으로 50년 수명 못 채우는 메로 (2020)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30747


최근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 세계 소비량의 80%는 불법 어획물이라는 이 생선. 굳이 먹는다면 자라나는 학생들이 먹는 게 맞다고 그냥 넘겨야 할지, 다른 생선으로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영양소를 굳이 멸종위기종을 잡아 먹으면서 채워야 하나 얼굴을 찡그려야 하는지 엄마도 혼란스러웠어.


그런데 그것보다도 엄마가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아이들에게 비싼 생선이라고 말하면서 배식을 한 부분인데..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이거야. 학교에 전화해서 따지기? 그린피스에 가입해서 후원금 보내기?

아니. 너의 생각을 묻고, 나의 생각을 말하고 너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고 파타고니아이빨고기도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기.


어른이 아이에게 비싸다 싸다, 라고 말하는 건 일단 엄마는 잘못됐다고 생각해. 그러면 콩나물은 천원짜리로도 살 수 있을 텐데 그렇다고 콩나물은 다 남겨도 되고 버려도 되는 거야?


다른 반찬을 주면서 그 어른이 이건 싼 거야, 이건 얼마야,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왜 이 물고기한테만 그런 말을 했을까?


네가 얼마 전에 거북이가 멸종될까봐 무섭다면서 울었잖아. (오바마의 자연 다큐를 함께 시청함) 멸종이 뭔지 알지. 파타고니아이빨고기도 자꾸 먹으면 그렇게 된대. 그래서 엄마는 사먹지 않은지 오래됐어. 퇴근 후에 여의도의 생선구이집에서 쉼없이 먹던 나날들과 안녕했다고.


그렇다고 학교에서 준 물고기를 먹지 않을 필요는 없지만 네가 네 식단을 선택할 수 있을 때가 오면 그때는 네가 잘 생각해봐. 내가 굳이 이 물고기를 사서 먹어야 하나. 사는 사람이 없으면 잡는 사람도 없어지거든.



어제 저녁엔 제철 생선인 병어를 구웠어. 농어목 병어과의 바닷물고기. 영어로는 butter fish.  

이 물고기는 굳이 남극까지 가서 잡지 않아도 우리나라 바다에서도 잡히는 물고기야.

네가 맛있다면서 한 마리를 다 먹었어.

영국에서는 고등어, 연어 정도만 접하던 네가 갈치, 조기, 병어 심지어 엄마는 원하지 않던 메로까지 먹어내다니.

엊그제 엄마가 너무 흥분했었나보다. 맛있었냐고 먼저 물어볼걸. 그 다음에 'BUT'이라고 시작하는 긴 이야기를 늘어놨어도 됐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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