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시작을 앞두고 있는 아이.
아이 친구 1은 영어 학원을 다니는데 자기 영어 숙제를 우리 아이에게 시킨단다. 친구1이 불러서 그 집에 가면 먼저 그 아이의 학원 숙제를 해줘야 걔가 놀아준다며, 안 하면 베란다에 가두거나 때린다고 그냥 영어 숙제를 도와주고 같이 노는 게 낫다고 말을 했다. 가두고 때리다니? 엄마인 내가 놀란 반응을 하자 이미 작년 담임선생님에게 일렀고 걔가 선생님께 혼났다면서 더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걸 나는 방학이 되고서야 알았다. 왜냐하면 방학 때가 되어서야 나에게 말을 했으니까.
아이 친구 2는 무슨 일인지 옷깃이 스치기만 해도 아! 라고 소리내며 왜 때리냐며 펑펑 운다. 나도 몇 번 목격했는데 아마도 관종이거나 애정결핍인 듯하다. 때린 게 아니라 그냥 두꺼운 패딩과 두꺼운 패딩이 스치기만 한 건데 왜 그러냐고 타이르기도 하고 가끔 우리집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일이 있어서 그것도 혼내보았다. 또 함께 놀 때 내 아이보다도 나에게 뭘 해달라고 하는 일이 더 잦은데 처음에는 아이 친구니까 다 해주다가도 아 이게 애정결핍인가 싶어서 지금은 들어주지 않는다.
아이 친구 3은 아이 친구 2가 너무 싫다며 내 아이에게 말한다. 그런 대화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나는 개입해서 에이, 그러면 안 되지. 사이좋게 지내, 라는 빈말을 하기도 하고 '걔가 계속 이유없이 우는데 어떡해요 그럼?'이라는 이 아이의 원성에 '그건 그렇네. 걔는 우는 버릇이 들었나봐. 고치면 좋겠다'며 반쪽짜리 공감을 해주기도 한다.
한가로운 오후. 이 아이들에게 연락이 왔다. 넷이 놀자는 거였다. 아이는 전화를 한참 붙들고 있더니 '아니야. 나 오늘 못 놀아, 끊어'라고 대답했다. 친구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가 왜 그런 반응을 했는지 궁금했다. 아이는 우는 소리없이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기도 친구들과 놀고 싶지만 분명히 이 조합으로 놀면 서로 다투고 싸우고 울고 끝날 거라며 그러고 싶지 않단다. 그래서 못 논다고 말했단다.
맘카페엔 이런 질문들이 흔하다. 아이 친구 관계 고민. 조금 더 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이미 초월한 말투로 다 지나간다고 댓글을 달기도 하고 누구랑 누구를 분리하고 담임에게 말하고 등등 본인들에게 통했던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같은 고민이 있는 엄마들은 자기 상황을 토로하며 댓글을 달기도 한다.
나는 고민까지는 아니지만 (이건 내 고민이 아니라 내 아이의 고민이 되어야 할 테니까) 아이가 자기 선에서 놀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 놀라워서 브런치를 열었다. 기록하고 나중에 다시 기억하고 싶어서. 전화를 끊고나서 소리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릴 거면서도 나가서 놀지 않은 것에 좀 놀랐다. 잘했다고 하기도 그렇고, 왜 그랬어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논다고 해, 하기도 그렇고. 왜냐하면 아이가 직접 결정한 일이니까 그냥 존중해주고 싶지만 엄마로서 놀란 건 어쩔 수 없다.
8세 자기 아들을 돼지라고 놀린 친구를 찾아가 삿대질하며 학폭으로 신고할 거라고 한 엄마가 무죄를 받았다는 기사를 어제 보았다.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에 대한 무죄이지 그 엄마가 여러가지 면에서 클린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나는 한국의 학부모들이 서로 대화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고 12년을 지내는 사람도 많을 거라고 본다. 일부 학부모는 대화를 해도 안 통한다고 말하기도 쉽지만 그래도 노력해보고 포기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본다.
내 아이는 오늘은 친구들을 포기했지만 내일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
내일은 친구 1이 학원 숙제를 스스로 했으면 좋겠고
친구 2가 굳이 울지 않아도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고 그 결과로
친구 3이 친구 2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넷이 꺄르르르 잘 놀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