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겐 여기저기서 선물 받거나 구입한 플라스틱 물통이 10개 정도 있지만 자주 들고 다니는 것은 산리오 캐릭터가 그려진 물통이다. 아.. 라떼는 일본 거 가져가면 손바닥 맞았는데.. 오늘 아침, 아침밥을 먹다가 아이가 말했다.
- 엄마, 오늘은 다른 물통 가져갈래.
- 왜?
- 친구1이 '너는 물통이 이거밖에 없냐? 왜 이거만 갖고 다녀?'그랬어.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8살인 우리 아이를 지긋이 보며 나는 말했다.
- 네가 정말로 그 애 말처럼 물통이 하나밖에 없어?
- 아니
- 그럼 걔가 진실을 말한 것도 아니네 뭐. 여기서 우리가 진짜로 생각해야 되는 게 뭔지 알아?
- 뭔데?
- 만약 네가 진짜로 물통이 하나 뿐인 아이면?
엄청 상처를 받았겠지. 엄마는 네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빠가 없는 상태로 여태 살고 있지만 아무도 나한테 '너는 아빠 없잖아'라는 말을 안 해. 그게 진실이더라도 상처 주는 말이잖아. 만약 누가 그런 말을 나에게 했다면 난 오히려 그걸 기회로 삼을 것 같아. 이야.. 너 나쁜 애구나. 지금이라도 너가 나쁜 걸 알아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그것도 모르고 너랑 오래오래 친구할 뻔했네, 했을 것 같아. 뭐 그렇다고 네가 걔랑 친구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야. 아직 너도 네 친구도 어린이잖아. 어린이들은 배우면서 크는 거지 뭐. 엄마는 네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네가 물병을 바꿔 가는 일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네가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해. 네가 쿠로미가 좋아서 갖고 다니는 건데 뭐. 친구에게 다른 물통이 있다는 걸 굳이 보여주려고 바꿔간다는 건 좀 그래.
주절주절 나 혼자 말이 많은 아침이었다. 우리 아이는 바지 위로 팬티가 살짝 보여서 친구들이 '야 팬티 보여!'라고 말하면 '야 넌 팬티 안 입냐?!'라고 받아치는 편이다. 팬티 보였다고 며칠을 끙끙거리고 나 학교 안 가! 하는 유형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친구에게 물통이 하나밖에 없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하려는 것이 내겐 아이 성향과 다르게 느껴졌다. 일부 다른 엄마들처럼 그래! 다른 거 가져가! 제일 좋은 거 가져가! 이러질 못하겠다.
내가 인스타에서 팔로하는 계정 중에 선천적 피부병을 앓고 있는 귀여운 아이가 있다. 내가 그 아이를 팔로하는 걸 내 딸도 알고 있는데 물통 때문에 그 아이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 너 그 아이가 사람들에게 가장 바라는 게 뭐일 것 같아?
- 안 아프게 도와주는 거?
- 아니야. 걔는 자기를 다른 아이들하고 똑같이 대해주기를 바랄 거야.
엄마는 물병이 하나든 열 개든 그냥 똑같이 대해줄 수 있는 게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물병이 하나라고 놀리거나 열 개라고 부러워하거나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 사람들이 그 아픈 아이 옆을 지나갈 때 어머 너는 피부가 왜 그러니, 하기를 바라지 않겠지. 우리가 아기를 볼 때 작고 귀여워서 어머 귀여워라, 까지만 얘기하는 것처럼 그 아이에게도 똑같이. 어머 귀여워라, 여기까지만 하는 거야. 피부가 어떻고 저떻고 첨삭할 필요가 없어.
또 2절, 3절까지 얘기한 것 같지만 아이가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결국엔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른 물통에 물을 넣어주었다. 2절, 3절까지 얘기했지만 4절도 준비되어있었다는 건 여기, 브런치에서 이야기할 거다. 4절은 물통을 바꾸어 가더라도 친구1은 어차피 또 다른 걸로 시비를 걸 거라는 사실. 그 아이와 내 아이가 마인드를 바꾸지 않는 이상 물통이든 가방이든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
아이고 어머니.. 물통 하나에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모르겠어요. 우리 아이라도 안 그랬으면 좋겠나봐요. 전세네 자가네, 외제차네 국산차네, 산리오네 아니네, 방학 때 외국을 가네마네 어린이들의 그런 소리가 지긋지긋한가봐요.
그래도 우리 아이다운 일은 여전히 진행 중임에 감사한다. 발이 커져서 새로운 고무신발을(크**) 사주었는데 거기에 다닥다닥 붙이는 지비츠? charms?를 하지 않겠다고 한 거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어쩌면 엄마들 사이에서일 수도) 경쟁적으로 반짝반짝이는 거, 더 큰 거, 비슷하게 생긴 거 말고 정품 캐릭터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것들이 꼴보기가 싫었는데 아이가 먼저 거부했다. 새 신발에는 아무 것도 붙이고 싶지 않다고.
그래.. 그래라.. 참 너 답다. 근데.. 이전 신발에는 10개 붙이고 있다가 아무 것도 안 붙이니까 갑자기 너무 없어뵌다.. 하하.. 하나만, 딱 한 개만 붙일까..?
덧붙임:
함께 보면 좋을 듯하여 오은영 박사의 책 <어떻게 말헤줘야 할까> 일부를 붙여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