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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Mar 30. 2022

네가 처음으로 집에 친구를 데려왔어

안녕? 같은 반 친구?

우리 딸이 2학년으로 지낸 지 한 달 가까이 되어가네. 1학년 입학할 때는 프리저브드(preserved) 꽃다발도 사서 안겨주고, 새 옷도 입혀주고 그랬는데 두 번째라고 아무 것도 안 했네. 그 때 산 꽃다발은 여전히 그 모양 그대로이고(preserved니까!) 그때 산 새 옷은 이제야 제대로 맞아. 그런데 너무 알록달록해서 그런가? 자꾸 네가 안 입겠다고 하고 검은색 회색 옷만 입으려고 해. 알록달록한 건 조금 더 크면 아예 안 입을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입어주지... 


다양한 인종의 친한 친구들을 뒤로 하고 한국에 온 지 2년이 되어가고 있어. 처음에 한국에 와서 유치원에 갔을 때는 왜 여기 아이들은 피부색이 다 똑같냐고 물어보던 너였는데, 지금은 한국어가 더 편한 2학년이 되었어. 엄마는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말하자면 외향적인 성격의 ENFP인데, 코로나 상황 때문에 유치원에서도, 1학년 단톡방이 생겼을 때도 섣불리 너에게 새 친구를 만들어주지 않았어. 못 한 게 아니라 그렇게 안 했어. 엄마 알지? 영국에서도 같은 반그룹에서 인싸였던 거. 코로나 때문에 예민해져서 사는 나라까지 바꾸었는데 마스크를 벗고 새로운 친구들을 따로 만나서 함께 뭘 먹고 노는 걸 못하겠더라고. 엄마가 원래 친하던 친구들의 아이들하고나 놀았지, 새 친구 하나 없이 유치원 생활과 1학년 1년을 보내게 해서 미안해. 지난 겨울 방학 때도 단 한 번도 온전한 네 친구와 놀지를 못했네. 


코로나가 새 친구와 오랜 친구를 가려서 찾아오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게 있어. 원래 알던 친구들은 성격과 기질을 아니까, 코로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고 어떻게 할 건지를 파악할 수 있잖아. 하지만 새로 사람을 사귀면 말이야, 관계가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그 사람들을 잘 모르잖아. 확진인데 아니라고 말할 사람인가, 격리 중에 괜찮다고 나올 사람인가, 그런 파악을 짧은 시간에 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새 사람들을 멀리 했던 거 같아. 설마? 그런 사람들이 있느냐고? 한국말에 이런 게 있어. <설마가 사람 잡는다>


그러다가 2학년이 되면서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와 네가 다시 같은 반이 된 거야. 1학년 때는 이름만 가끔 들었던 거 같은데 2학년이 되면서 그 아이 이야기를 매일 했어.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그 아이와 놀고 싶다고, 그런데 내가 집에서 걱정하면서 기다릴까봐 그냥 집에 왔다고. 그 아이가 노는 놀이터는 우리 아파트가 아니라서 엄마가 어디인지 모를 거라고. 


어느 날, 엄마가 그러면 함께 놀이터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어. 그리고 하교 시간에 교문 앞에서 너희 둘을 기다렸지. 그러다가 처음으로 그 아이를 만난 거야. 안녕? 네가 OO구나. 반가워. 나는 OO 엄마야. 


하지만 나는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었어. 만약 너 혼자 저 아이와 놀고 싶어했던 거면 어떡해. 저 친구는 너랑 놀고 싶지 않은데 네가 혼자 귀찮게 하는 걸까봐 네 친구에게 물어봤어. 


- 혹시 우리 아이가 너를 괴롭히니? 아니면 놀고 싶지 않은데 놀자고 강요하는 거니?


네 친구가 대답했어. 아니라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놀고 싶은데 엄마랑 같이 있어야 된다고 해서 그동안 못 놀았다고. 


그래서 우리 셋은 옆 놀이터에 가서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가 그 옆 놀이터로, 그러다가 그 옆옆 놀이터로 계속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놀았어. 네 친구에게는 휴대폰이 있어서 부모님과 통화를 하더라고. 지금 누구 엄마와 같이 있으니까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걱정하지 말라는 네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 네 친구는 이 동네에 우리보다 오래 살아서 네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어느 상가에 화장실이 있는지도 다 파악하고 있더라. 정말 똘똘해! 


그러다가 한 남자가 다가와서 너의 아빠라고 소개를 했어.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렇게 놀이터에서 친구 아빠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고, 그날 저녁엔 친구 엄마의 연락도 받았어. 


그리고 며칠 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너의 손가락이 어딘가 빠르다고 느꼈는데 문을 열자 네가 그 친구를 데리고 온 거야. 

그와 동시에 친구 아빠에게 연락도 왔어. 아이들이 지금 그 집으로 가고 있는데 괜찮으시냐고 확인 연락이 온 거야. (괜찮다고 답장을 했지)


와. 이거 나만 마음이 웅장해지는 건가? 네가 친구를 집에 데려왔어! 

어릴 때는 대부분 부모들끼리 연락을 먼저 하고 친구들과 플레이데이트를 해. 갑자기 친구가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지. 특히 어린 아이를 혼자 두면 아동학대가 되는 영국에서는 더더욱.* 


휴대폰이 없는 네가 나에게 미리 알려줄 방법도 없었겠지. (머리가 조금 더 컸으면 친구 폰으로 나에게 연락을 했을까?) 학교 끝나고 '너 우리 집에서 놀래?'라고 친구에게 물으며 '그래!'라는 대답을 듣고 신 나게 신발주머니를 빙빙 흔들며 집으로 뛰어왔을 너희 둘을 생각하니까 미소가 절로 나왔어. 


나도 오랜만에 우리집 플데(playdate)에 신이 나서 '너희 딸기 먹을래?'라고 물었는데 네 친구는 알고보니 딸기 알레르기가 있더라. 그래서 대신 사과를 각자 그릇에 담아서 주었지. 이후 둘 다 학원 일정이 있어서 오래 놀지는 못했지만 네가 친구를 데려온 그 날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할 일이 생겼지. 

다음 날 아침에 친구 엄마에게 문자가 왔거든. 

친구가 아침부터 열이 나서 검사를 해봤는데 양성이래. 


깜짝 놀라서 나도 부랴부랴 검사를 해봤는데 다행히 열도 없고 결과도 음성이었어. 그래도 이제 계속 지켜봐야지. 사람마다 양성에 대한 반응이 다르지만 요즘엔 누가 감염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라 놀라 날뛸 필요도 없거든. (오늘 신규 확진 424,641명) 처음에 우리가 한국에 왔을 때를 엄마는 기억해. 영어로 대화만 해도 동네 할머니들이 갑자기 멀리 하면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 며칠에 들어왔냐, 하며 색안경을 끼고 우릴 피했거든. #영국변이 를 마치 우리가 갖고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친구가 열도 내리고 얼른 괜찮아져서 네가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 

그때도 딸기 말고 다른 과일을 준비해놓을게. 

너희가 함께 보드게임을 하면서 정정당당함을 배우고

함께 레진아트를 만들면서 예쁜 걸 나누어 갖고 

함께 노래방 반주를 켜서 아이돌 노래를 부르는 걸 다시 듣고 싶거든. 


무엇보다도 네가 내 계획에 없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서 행동하는 걸 또 경험하고 싶거든. 

다 컸다 우리 딸. 다음엔 남자친구도 데려오자. 후훗 

그때는 엄마 마음이 웅장해지는 게 아니라 웅성웅성해지려나.



*The Nation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Children ( NSPCC ) says: children under 12 are rarely mature enough to be left alone for a long period of time. children under 16 should not be left alone over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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