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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Jun 03. 2021

네가 이혼에 대해 물었어

'이혼이 뭐야?'


그때 내가 대답을 잘못한 것 같아. 이혼은 엄마 아빠가 같이 살지 않는 거야, 라고 답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를 텐데.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우리집에서 나오지 않았을 말들이 네 입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어. 공부를 안 하면 바보가 된다는 말은 담임에게 들었다고 했고, 엄마 머리에 뿔이 난다는 말은 친구들에게 들었다고 했어. 아마 친구들은 엄마가 화를 낸다는 뜻으로 '뿔난다'는 말을 했을 거 같은데 해외에서 태어나고 자란 네가 아무리 언어 습득이 빠르다고 해도 수많은 한국적 관용어구까지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전혀 그 질문을 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이혼이 뭐냐고 물었어. 엄마 아빠가 같이 살지 않는 건데, 그게 잘못된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1학년이 그 이야기를 곧게 들었을리는 없겠지. 일단 우리가 같이 살고 있지 않고 있으니까. 


엄마와 아빠는 이혼한 건 아니야. 아빠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서 이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혼으로 가고 있는 길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은 '코로나가 위험하니 친정에 가 있어' '한국에서 살 집을 구할 돈을 마련해볼게'였으니까 그냥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지금 상황 때문에 같이 지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게 이혼한 상태인 건 아니야. 


그러다가 가정의 달이 되었어. 학교에서 가족 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했대. 셋이 가족사진을 찍은 게 언제였더라? 일단 같이 살지 않게 된 건 이제 벌써 1년이 되었으니 1년 안에는 없겠다. 여태 풀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얹어둔 해외 이삿짐 사이에서 사진앨범을 찾았어. 몇 년 전 브라이튼(Brighton)에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이 있길래 그걸 네 반짝이는 가방 안에 넣었지. 그런데 그때 네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어. 


"엄마.. 근데 나 OO한테 엄마 아빠 이혼했다고 말해버렸어.."


출처 : google image


엄마는 뿔나지 않았어. 하지만 궁금했어. 왜 네가 그렇게 생각했을까 걱정되었어. 그냥 엄마와 아빠가 같이 살고 있지 않고 아빠가 시간이 될 때만 오니까 그랬던 것 같은데, 그건 이혼한 게 아니라 굳이 label을 달자면 주말부부라고 하는 거라고 말해주었지. 네 친구 A도 아빠가 다른 나라에 있고 A랑 엄마는 한국에 살잖아, 그렇다고 해서 엄마 아빠가 이혼한 건 아니거든. 그리고 이혼한 게 나쁜 건 아닌 건 엄마가 말한 적 있지? 만약 이혼한 부모가 있는 친구가 있다고 해도 그 친구를 놀리면 안 돼. 그런데 너는 사실이 아닌 것을 친구한테 실수로 잘못 말한 거니까 내일 학교에 가서 다시 말할 수 있을까?


"못해.. 부끄러워. 난 용감하지 않아."


그러면 용기가 생길 때 그때 얘기해도 돼. 꼭 내일 얘기하지 않아도 되지만 언젠가는 얘기했으면 좋겠어. 알았지?...라고 말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여러 가지 계산을 했어. 벌써 그 아이가 자기 부모에게 '엄마! 누구누구네 엄마아빠는 이혼했대!'라고 말하고, 그 부모가 다른 학부모에게 말하고 이미 나는 교문 앞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혼한 사람으로 보이고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학부모 중에 아는 사람이 1명도 없는 것이 이럴 땐 편리하긴 하네. 반톡에다 갑자기 커밍아웃이라도 해야 하나? 남자 아이 엄마들이 축구교실 멤버를 짤 때도, 여자 아이 엄마들이 숲체험 멤버를 짤 때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던 나인데 이렇게 갑자기? 


<안녕하세요 누구 엄마인데요, 혹시 저희 부부가 이혼했다고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건 잘못된 정보임을 알려드립니다. 저희는 주말부부입니다.>


우습지? 드라마 원고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지만 이런 비슷한 어투의 메시지를 엄마 아빠가 영국 학교 학부모방에서 한 적은 있는 거 아니? 코로나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모르고 전세계가 헤매던 작년 초 일이야. 


<저희 가족이 한국을 3주 동안 다녀왔지만 현재 뉴스에서 다루고 있는 대구 지역과는 상당히 먼 지역에 있었으며 학교 측에서 2주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을 것을 권유하여 법적으로 그래야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저희는 그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일로 쓸데없는 오해와 억측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작년 일을 생각하니 내가 이혼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는 것쯤이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 호주에 크루즈 여행 다녀온 학생은 바로 학교에 나와도 된다고 했으면서 삼촌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다녀온 학생은 2주 동안 나오지 말라고 했던 분노의 사건. 그래, 뭐가 중요하니. 그냥 이 일은 너에게 맡기자고 생각했어. 엄마는 등판하지 않을래. 


아빠? 아빠한테도 물어봤지. 아이가 학교에서 이런 말을 한 모양인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봤는데 아빠 대답은 이랬어. 


"I don't know. Do what you think is the best."


베스트는 내 아이를 믿고 맡기는 거지.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고 네가 학교에 다녀왔어. 나는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레 물어봤지. 혹시 엄마 아빠 이혼한 거 아니라고 친구한테 다시 말했어?


- 응. 줄넘기 시간에 내가 말했어. 그렇게 말한 거 장난이었다고.

- 우와. 용감하네! 근데 친구가 뭐래?

-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웃었어. 


그래.. 천진난만한 1학년들 사이에서 등골이 오싹해진 천진난해한 엄마였네. 2학년이 되면 엄마도 조금 더 여유가 생기겠지? 그리고 아빠랑 다시 다같이 살 수 있겠지? (아빠. 보고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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