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살 때 우리집에는 총이 있었다. 미국도 아니었는데 그랬다. 남편이 경찰이라서도 아닌데 어쨌든 허가 받은 남편의 총이 있었다. 아이가 만질까봐 높은 곳에 보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에게는 철저히 총의 두려움에 대해 교육하고 있었다. 레고 전체 제품 중 30%가 전쟁과 무기를 소재로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은 절대 사주지 않았다. 하다못해 비눗방울 장난감도 총 모양으로 된 것은 절대 사주지 않았다. 뭘 그렇게까지, 오바육바라고 해도 그렇게 했다. 나중에 커서 친구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되면 모를까 내가 내 손으로 아이에게 총칼을 소개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서만 사는 한국인들은 아마도 총, 칼, 전쟁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그 두려움을 모를 것이다. 북한이 지척에 있어도 말이다.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안전한 나라이니까. 나도 한국에 살 땐 두려움을 몰랐다. 11년 전,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미국인 친구 마이클을 태우고 내 차로 이동 중이었다. 옆차와 시비가 붙었고 나는 따질 요량으로 창문을 내렸는데 갑자기 마이클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숙이며 기겁을 하였다. 그 사람이 총을 가지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소리를 지르면서.
응?
시카고인에게 총이란 그런 공포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남동생이 폭신폭신한 스펀지 총알이 든 장난감 총을
7살 내 아이에게 겨누었다.
총구를 절대로 마주하면 안 된다고 평생 교육을 받은 아이는 겁에 질려 평소에 내가 들어보지 못한 톤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안다. 내 아이가 장난으로 비명을 지르는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지 톤만 들어도 다 안다.
나는 동생에게 화를 내었다. 사실은 동생에게 화를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아이에게 너를 지켜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목적이 더 컸다. 누가 너를 해하려고 하면 그 사람을 엄마가 혼내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목적이 더 컸다.
그런데 동생은 그 상황을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도 이해한다. 이리저리 다 이해만 하고 정작 나는 이해 받지 못하는 삶은 처절하다.
누나와 조카의 이상반응에 덩달아 화가 난 동생은 '좆 같은 집구석 같으니라고'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나갔다. 그리고 엄마 나, 저 3명 밖에 없는 가족채팅방에서도 나갔다.
나는 그가 평생 본인도 모르게 나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놔둘 수 없었을 뿐이다.
우리말 '데면데면하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친밀감이 없이 예사롭다.
2. 성질이 꼼꼼하지 않아 행동이 신중하거나 조심스럽지 아니하다.
동생의 데면데면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2)
나와의 사이가 데면데면해졌는데 (1)
이후에 동생에게 딸이 하나 생겼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아기를 키우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단순히 아이에게 총구를 겨눈 일로 화를 냈다고는 본인도 생각하지 못할 거다.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내 동생은
아이에게 정도가 심한 장난을 쳤고
그때마다 나는 화를 냈다.
해외에 돌아가서도 아이는 동양인 남성만 보면 고개를 숙이고 겁에 질린 태도를 보였다.
남동생 때문이었다.
나중에 동생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게 아이를 재미있게 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하면 아이가 좋아하는 줄 알았어. 아무도 나에게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거든.
그 말은 마치 그가 십수년 전에 내게 한 이 말과 똑같이 들렸다.
나는 무얼 해도 너를 이길 수가 없어. 하지만 힘은 내가 세니까 힘으로는 내가 이길 수 있겠지. 그래서 내가 널 때리는 거야.
나는 그가 자기 딸도 그런 태도로 키우고 있을지 궁금한 것이다.
20대 여자였던 내가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남자에게 맞은 그 날.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던 가정폭력이 이런 건가.
엄마도 그때 아저씨에게 맞고 나서 그 집이 끔찍하게 싫었겠구나.
나는 갑자기 꽃집에 들러 꽃다발을 샀다.
꽃다발을 사면서도 손이 벌벌벌 떨렸다.
내가 너무 불쌍해서 위로해주고 싶었나보다.
대체 그때 왜 내가 나에게 꽃을 선물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덜덜덜 흔들리는 꽃을 들고 현관을 열었다.
집에 그가 있으면 어떡하지..
또 때릴 건가.
집에 그가 없으면 어떡하지..
이따 들어오면 또 때릴 건가.
그가 들어올 때까지 이렇게 두려움에 떨면서 있어야 하는 건가.
띠띠띠띠.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가 들어왔다.
나는 꽃다발을 들고 거실에 서 있었던 것 같다.
들어오자마자 남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미안.
그리곤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우리가 20대 어른이긴 했지만
여기서도 엄마의 역할이 실종되었다.
나는 동생과 부딪히기 싫은데.
그러면 엄마가 낳은 아들과 나의 사이를 엄마가 중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엄마에게도 화를 냈다.
엄마가 아들을 잘 키웠어야지,
적어도 엄마를 패지는 않겠지,
그러면 엄마가 잘 타이르고 가르쳤어야 하는 상황들을
다 내가 뭐라고 하니까
쟤가 날 싫어하는 거잖아
엄마는 늘 대답이 없다.
상담사는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다.
자기 목숨을 걸고 낳은 아들이잖아요.
이 상담이 나에게 완벽한 도움이 되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