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을 내맘대로 자가 종료한 후에 도서관에 가서 심리 관련 책을 수십권을 빌려 읽었다.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대학 때 심리학 수업을 교양으로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와 지금 말고는 심리와 관련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약 20여년 간 그랬던 거다.
나는 나름대로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라 그런 책들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실제로 심리상담은 마음을 튼튼하게 하러 가는 곳이다. 신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PT를 받는 것처럼 마음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상담사를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상담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자가중단한 상태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읽다가 공감가는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뒀는데 표지를 찍어두지 않아 어느 책인지 모르게 됐다. 이런 실수를.. 가끔 내가 책 내용을 올릴 때마다 어느 책이냐고 물으시는 분들에게 죄송하게 됐다. 도서대출이력을 여겨보니 다음 세 권 중에 한 권인 것 같다.
- (상처보다 크고 아픔보다 강한) 당신을 믿어요
- 마음의 상처와 마주한 나에게
- 나를 지키는 매일 심리학 : 무자비한 세상에서 단단한 방패막이 되는 34가지 심리 법칙
책에 나온 이 말.
<추측하지 말고 질문할 것>
이건 내가 만난 상담사가 한 말이기도 하다. 이 책에 따르면 <깊은 상처를 가져본 사람은 더욱 그렇다. 한번 아파본 사람들은 특수한 유발자극의 상황에 놓였을 때, 상대의 의도나 또 다른 진실을 알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추측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첫사랑이 그랬다. 그는 동성연애자였는데 그가 왜 나를 만났는지 아직도 의문을 풀지 못했다. 본인이 그렇다는 걸 숨기기 위해 나를 데리고 다닌 것인가(그때는 지금보다 게이들에게 세상이 더 각박했다), 그냥 그때는 잠깐이나마 여자인 내가 좋았던 것인가, 결혼해서 애낳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매일 만나는 게 뭐 어때..라고 생각한 것인가.
그때도 알 수가 없었고 지금도 모른다.
미안해. 네 잘못이 아니야.
첫사랑 그의 마지막 문자였다. 이 문자를 남기고 갑자기 그가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나는 내가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기가 힘든 타입이다. 다른 말로, 집요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단, 이 끈질기고 집요한 성격은 '내가 알고 싶은 것'과 '내가 관심 있는 것'에만 적용된다. 가끔 내 이런 특징이 자기에게도 영향이 있을까 두려워하는 일부 친구/지인들을 보는데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으니 그들에 대해 집요할 일도 없다.
하지만 첫사랑과 남편, 아이, 일에 대해서는 다르지 않겠는가. 난 집요할 권리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고집을 부릴 권리가 있다.
I'm sorry this has come to this end.
남편은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문자를 보내고 내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다시 추측하기 시작했다. 한번 상처받았던 사람답게 습관적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내 문자도, 아빠 뭐하냐는 아이의 문자에도 그가 전혀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또 다시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왜 나는 질문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걸까. 추측하지 말고 질문하라는데, 왜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일까.
다시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있는 중인데 아직 죽지도 않은 상태가 된 것 같았다.
곧 바닥에 머리를 박으면 죽긴 할 텐데 그게 언제인지 정확히 모른 채 추락하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