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과 가망성

더 나은 사람이 되어주세요

by Aeon Park

어제 아침. 키우는 물고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


할머니 : 물고기가 자꾸 이렇고 저렇고 (이어지는 불평 불만..)

손녀 : 그러면 물고기를 키우지 말까?

할머니 : 그렇다고 키우던 걸 안 키워? 그러면, 너도 말을 안 들으면 갖다 버릴까? 키우지 말까?


친정엄마에게는 나아질 가망성이라는 게 없는 것이 확실해졌다.


* 가망 : 될 만하거나 가능성이 있는 희망




언제나 늘 가까이에 있고 주말마다 만나던 아빠가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게 된 지 한 달.

내가 잠시 자리만 비워도 불안해하며 살을 맞대고 있으려는 아이 앞에서 엄마는 갖다 버린다느니 키우지 않는다느니 따위의 이야기를 아무 생각없이 하고 있었다.


수 년 전에 엄마의 여동생에게 연락이 온 적이 있다.


- 언니가 좀 이상해. 네가 좀 살펴봐야겠다. 그렇게 고상하던 언니인데 갑자기 무슨 필터가 없는 사람처럼 막말을 해. 말을 걸러서 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 같아.


혹시 치매인가 싶어, 그때 뇌검사를 이리저리 했던 것 같고, 결과는 이상없음이었다.


뇌이상이 아니라면 그건 그냥, 너무 오랫동안 혼자 지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엄마는 나이 40에 병으로 남편을 잃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살았다.

옆에서 맞다 틀리다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자기 생각만 맞게 된 건 아닐까 싶었다.

어쩌다보니 주로 자기가 내린 결정이 옳았고 그게 맞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돌아왔다. 이민 갔던 딸이 자식을 데리고 집으로 기어 들어온 것이다. 남편이 집을 구할 때까지만이라고 했는데 집을 구해 다시 같이 살자던 남편도 갑자기 사라졌으니 그냥 이대로 셋이 살게 된 것이다.


나는 다시 엄마와 살기 시작하면서 시대가 바뀌었다며 잔소리를 해댔다. 이거 버려라. 이건 음식물쓰레기가 아니다, 여기에 버리면 안 된다. 이건 왜 쌓아두냐. 버려라. 분리배출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 이건 왜 이렇게 했냐. 요즘엔 이거 아니다. 엄마는 도대체 내가 해외에 살던 10여년 동안 뭘 한 거냐. 왜 사람이 발전이 없냐.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데 왜 배우질 않았냐. 이렇게 그냥 산 거냐.


나한테 하는 소리를 괜스레 엄마한테 하는 것처럼 쏟아내었던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아이에게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도 하지 않는데

갖다 버린다니. 나는 아침부터 기염을 토했다.

당장 손녀에게 사과해라. 버린다고 해서 미안하다고 말해라.


- **야, 할머니가 잘못한 거야? 그런 거야?


라고 말했을 뿐, 엄마는 입술을 쭈삣거리며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50년대생인 엄마가 그렇게 키워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때는 어른이 어린이에게 사과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다. 엄마의 아빠는 아들을 낳은 아들에게만 유산 상속을 하고 돌아가셨다. 어렸던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좋은 기억밖에 없는데 엄마는 그렇지 못했을 거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폴더폰을 본 적이 있다. 단축번호 1번은 첫째 아들. 2번은 둘째 아들. 3번은 첫째 아들이 낳은 아들이었다. 4번부터는 저장된 번호가 아예 없었다. 딸들도 없고, 집도 없고, 아내인 할머니도 없었다. 그때,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눈치를 챘다.


그런데 여기서 난 또 착각을 했다. 묻지 않고 나 혼자 추측했다. 그런 삶을 살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자기 부모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함께 살기 전까지는 몰랐다.

'큰 베개 좀 가져와'라고 말할 것을 '남자 베개 좀 가져와'라고 손녀에게 시키는 할머니가 될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집에 남자가 없는데 무슨 남자 베개를 가져오라는 거지, 혼란스러울 7세 딸아이가 엄마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토요일마다 방문하는 사위가 형광등을 고치고 세면대를 고쳐도 '고마워'라고 말하기 전에 '이래서 집엔 남자가 있어야 되는 거야, 그치 **아?'라고 말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녀가 그녀의 어른들에게 그런 말만 듣고 살았을 가능성 때문에 더 나은 할머니가 될 가망성이 사라진 것이다.

다음은 내차례인가.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내가 여기 있으니 그 다음은 내 차례인가, 나는 두려웠다.

엄마는 병으로 40에 남편을 잃었고 나도 40에 남편과 떨어져 살기 시작했다. 다만 서로 미워서가 아니고 함께 살 집이 없다는 이유로. 남편은 남편 엄마집에서, 나는 친정에서. 엄마인생과 조금씩 다른 점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어주었지만 난 늘 엄마처럼 될까봐 두려웠다.


상담사가 말했다.


엄마와 당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다른 삶을 산 다른 사람입니다.


둘째를 적극적으로 낳지 않은 이유가 엄마처럼 둘째를 낳고 엄마처럼 될까봐서라고 대답하는 나에게 상담사가 말했다. 둘째를 낳지 않음으로서 엄마와 다른 사람이 되어보려고 애쓰며 살았다고 답했다.


분명 엄마처럼 사는 것이 가장 성공한 거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딸이 엄마만큼만 살아줘도 대단히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던 2-30대를 지나 어쩌다가 엄마를 미워하는 40대를 살아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같이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남말은 듣기가 싫다.

해외에 살 때는 엄마를 홀로 사는 노인으로 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 눈물을 흘렸었다.

엄마가 몇 시간 동안 연락이 되지 않으면 이모를 시켜서 집에 가보라고 큰일난 것 같다고 울면서 전화하던 나였다. (결국 엄마가 늦잠을 잔 거였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와 같이 살기 시작했으면 덜 울어야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같이 살기 싫은 것도 아니고 내가 한국에 집이 있었어도 엄마와는 함께 살고 싶다. 엄마를 더는 혼자 두고 싶지가 않다.


엄마가 조금 더 나은 엄마였으면, 좀 더 나은 할머니였으면 하는 바람이 그렇게 잘못인 것인가, 자문해본다. 엄마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주면 내가 엄마처럼 되더라도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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