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식탁엔 두루마리 휴지가 있다

by Aeon Park

느릿느릿한 초등학생 저학년을 등교 준비시켜 학교를 보내는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아침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가 식탁 위에 있는 게 눈에 띈다. 함께 살고 있는 친정 엄마는 갑자기 내 눈치를 보신다. 알아, 알아. 뭔 얘기할 지 안다며 내가 잔소리를 폭격하기 전에 선수를 친다.


- 아니야. 잔소리하려는 거 아냐.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어.


나에게 가로로 길게 둘둘 말린 하얀 휴지는 화장실 휴지이다. 그렇게 밖에 안 보인다. 비슷한 모양인데 내 손보다 크다싶으면 키친타올이다. 모두 아시다시피 그 둘은 재질도 다르다. 키친타올은 화장실 휴지보다 비싸다. 갑티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간장 한 방울을 식탁에 흘렸을 때, 엄마는 갑티슈에서 티슈를 한 장 뽑지 않는다. 키친타올을 뜯어서 쓰지도 않는다. 그런 사소한 걸 닦자고 행주를 빨지도 않는다. 그럴 때 바로 적당한 것이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한 칸인 것이다.


내가 아침부터 식탁에 자리하고 있는 화장실 휴지를 보면서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이거였다.


- 엄마 세대에게 이건 혁신적인 제품이었을 거야. 이게 엄마에겐 그냥 깨끗한 휴지인 거지?


나는 엄마에게 대소변을 보고 쓰는 이 두루마리 휴지를 언제 처음 봤냐고 물었다.


19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이런 휴지가 발명되었고 대중화된 건 20세기 초반이라고 한다. 크리넥스 각티슈가 1924년에 판매를 시작했다고 하니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시에 사는 55년생 조씨의 손에 들리기 까지 또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게다가 갓을 쓰고 살았던 조씨의 아버지는 굉장한 가부장적이었기 때문에 아들도 아니고 아무리 딸이라도 첫정이 있을 첫째딸도 아니고 귀여운 막내딸도 아닌 middle child 조씨는 늘 뒷전이었던 것이다. 8n년생인 나도 할아버지가 갓을 쓰고 다니시는 걸 실제로 본 적이 있으니 이 정도면 우리 엄마 조씨의 고충은 설명이 됐다고 본다.


엄마는 어릴 때는 짚으로 뒤처리를 했다고 고백했다. 짚? The straw?? 재차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뭐래, 짚이나 있으면 다행이지,'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언젠가 엄마는 바다를 언제 처음 보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의 충격이 다시 왔다. 엄마는 고등학생 때 바다를 처음 보았다고 대답했었다. 충청북도에 살았기 때문에 바다가 가까이에 없었고 수학여행이나 가서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런 삶을 산 엄마에게 두루마리 휴지는 마치 비데의 등장과 같은 것이다. 오해말자. 엄마가 가난했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외갓집은 심지어 잘.살.았.다. 머슴을 두 명이나 두고 살았고 티비가 있어서 동네사람들이 다 우루루 온다는 그런 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에게 두루마리 휴지는 청결과 관련된 혁신적인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식탁 위에 오른다고 해서 전혀 이질감이 없는 것이다.


내 세대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 두루마리 휴지는 태어날 때부터 화장실에 걸려 있는 물건. 화장실에서만 보던 물건이 식탁에 있으면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밥 먹다가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올랄라! 경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아이 세대에게는 또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휴지로 don'tgo를 닦는다고? 아 thelove! 비데로 닦아야지!! 하게 될 날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화장실 휴지를 보고 경악은 했지만 잔소리 대신 질문을 했다. 두루마리 휴지가 식탁에 있어도 밥만 잘 먹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영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와 했던 대화를 덧붙이며 오늘 글을 마친다.


- 한국에서 왔다고? 반가워!

- 응 반가워

- 나 한국에 출장 가봤어. 화장실마다 비데가 있던데?

- 하하 그런 편이지. 여기는 앉을 때마다 bumbum이 차가워

- 그런 좋은 곳을 두고 영국엔 왜 왔어!? 나라면 절대 안 와. 비데 포기할 수 없어. 난 한국하면 비데야!


*그때만 해도 영국법으로 변기에 전자제품을 설치하는 게 public health danger, 불법이라 들었는데 지금은 완화되었는지, 비데를 설치한 집을 종종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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