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이런 나이
세계자살예방의 날은 9월 10일이지만 지금 글을 쓰고 싶어졌다.
스스로 자기목숨을 끊는 것을 자살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있고 OECD자살률 1위, 우울증 발병률 1위이다. 그래서일까, 주변에 자살한 사람 한 명쯤은 있는 삶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20대 때 한창 여의도를 빨빨거리며 방송한다고 다닐 시절에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더 많이 다녔다. 함께 프로그램을 하던 엠시도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함께 프로그램을 편집하던 편집실 국장님도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함께 일하던 아나운서의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거길 갔으니 분명 내게는 장례식이 더 많았던 사회생활이었다. 아마 내가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장례식장에서 며칠동안 먹고 자며 겪었던 일 덕분에 결혼식은 못 가더라도 장례식은 꼬박꼬박 다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고마운 일이라는 걸 아니까. 그런데 당시 옆자리에 앉았던 나와 동갑인 사람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며 자긴 장례식엔 한번도 못가봤다고 자기는 가봤냐며 내게 물어왔을 때 나는 당황했다. 어떤 행복한 삶을 살면 장례식을 한 번도 못 가볼 수가 있지? 어린 나는 질투가 났다.
장례식에 한번도 참석한 적이 없는 사람의 수보다 자살한 사람의 숫자가 주변에 더 많은 것. 바로 중장년의 삶이 아닐까 싶다.
수년 전, 친정엄마의 친한 친구가 자살을 했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있는 우리 엄마와 아삼륙하며 같이 여행도 다니고 그러던 친구분이신데 회사에 다니는 같이 사는 아들의 아침상을 곱게 차려주고, 잘 다녀오라고 웃으면서 인사도 해놓고는 아들이 출근하자마자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돌아가셨다.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던 가수도 2017년에 자살을 했다. 그룹 린킨 파크의 보컬(Chester Bennington)인데 수많은 상처받은 영혼들을 음악으로 보듬어줘놓고서는 자기는 사실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거냐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이 가수의 팬이라는 걸 알고 있던 친구들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자살에 대한 첫 번째 기억도 아마 가수였던 것 같다. 1996년의 고 서지원. 나는 서지원에 대해선 잘 모르고 정재형 님이 베이시스일 때부터 좋아하는 팬인데 내 가수가 다른 가수에게 처음으로 곡을 줬고 그게 서지원이었다. 그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결국 자살로 관심이 마무리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날은 편집실에서 자막 작업을 하고 있는데 친한 친구에게 울면서 전화가 왔다. 평소에 절대로 울지 않는 친구라 받으면서 너무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자살하셨고 지금 그걸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셨으니까 절차를 알지 않냐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울면서 물었지만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일단 경찰부터 부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이 자살을 하면 경찰서에서 가족부터 붙들고 수많은 질문을 하고 경찰이 오케이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모든 조사가 끝나고 장례식을 시작할 때 자살한 아버지의 전화기를 열어봤는데 주소록에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부를 사람이 없다고 이렇게 외로운 삶을 사셨던 거냐며 오열하던 친구였다.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도 자살을 했다. 남편과 파트너로 붙어다니며 열심히 일하던 경찰이었다. (경찰들도 군인만큼 서로 돈독하다) 그의 여자친구와 다함께 보기도 하고 이별 후에도 혼자 외롭지 않게 함께 다니고 그랬다. 우리가 출산을 했을 때도 예쁜 카드와 선물을 줘서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뭐 가장 친한 친구니까 당연한 것들이라 일일이 언급할 이유도 느끼지 못하겠다. 우리는 그가 인스타에 매일 운동하는 사진을 올리고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길래 이별 후에도 신체도 정신도 건강한 삶을 사는 줄 알았다. 그러던 근육질의 친구가 갑자기 모든 SNS를 삭제해버리고 목을 매달았다. 그가 모든 사진을 지워버려서 우리에겐 그 친구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이후에 지역신문에서 조회수를 위해 이 친구를 외롭고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사람처럼 기사에서 다루어서 온 경찰서와 친구들이 나서서 바로잡은 기억이 있다. 결코 내성적이거나 늘 혼자였던 친구가 아니었다. 우울증은 그런 게 아니다. 편견이다.
가까운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 주변인들은 죄책감에 빠진다. 내가 뭘 해볼 수 있었을 텐데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지 않은 게 맞는 것 같다. 내 탓이다. 내가 막을 수 있었는데 안 한 거다. 나는 왜 눈치가 없었을까. 나는 친구도 아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그 시기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거라는 전문가들의 말도 맞다. 분명 내 앞에서 웃고 있지 않은가.
20대의 나는 장례식에 한번도 못 가본 또래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40대의 나는 주변에 자살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말하는 또래에게 질투심을 느끼지 못한다. 안도감을 느껴야 맞고 실제로도 그렇다. 앞으로도 쭉 그랬으면 좋겠다. 친구가 죽을 생각을 하던 걸 전혀 모르던 나도, 장례식 예절을 몰라 쩔쩔 매던 당신도, 90살 100살까지 사시다가 조용히 눈을 감은 분들의 장례식에만 참석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