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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Sep 18. 2020

꽃잎을 따며 할말은 아닌 것 같았다

아이앞에선 개조심

나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함부로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매우 좋아! 라고 해도 될 것을 개 좋아! 라고 말하는 걸 즐긴다. 물론 어른들이나 언니오빠들 앞에서는 안 그런다. 


그렇게 해야 평소에 쌓이는 스트레스가 풀리고, 또 무조건 표준어만 써야 하는 일을 하다보니 더욱 그렇게 됐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방송사고다!라는 마음으로 긴장하며 말글을 쓰다보니 평소 말을 할 때는 아무렇게나 말을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런 내가 아이를 낳았다. 다행히(?) 외국에서 낳고 길러 아이가 비속어를 잘 알지 못해 내 언어 습관이 이관(?)되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이는 자란다. 옹알이를 하던 아이는 이제 2개국어를 한다. 영어가 훨씬 유창하지만 나름대로의 '언어성장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에 점점 더 나의 우리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 우린 한국에 산다.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널따란 들판에 잔디가 펼쳐져있었고 그 끝에는 인위적으로 노란 해바라기서껀 이름 모를 꽃들이 심겨 있었다. (*서껀 : ‘…이랑 함께’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그 주위로도 들꽃이 조금씩 피어 가을 분위기를 물씬 내고 있었다. 


아이는 그중 들꽃을 꺾어 들었다. 그리고 꽃잎 하나를 떼며 말했다. 


'존나...' 


너무 놀랐다. 우려하던 일이 최초로 발생하였다. 내 언어가 아이에게 이관된 거다. 아이는 다음 꽃잎을 작은 손으로 뜯으며 다시 말했다. 


'안 존나...'


아. 다행이다. 꽃잎을 하나씩 떼며 좋은 지 안 좋은 지를 점치는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나.. 안 좋나. 좋나. 안 좋나.' 


내 영향은 맞다. 나는 어미 '-나'를 즐겨 쓴다. 이거 좋나? 저거 가봤나? 이거 먹어봤나? 같은 거다. 

아이 앞에서는 거친 언어 사용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일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떨어지는 꽃잎들을 보며 다짐했다. 개큰일날 뻔했다. 내가 앞으로 더 개조심해야겠다. 

(참고로 초등학생이 욕을 배우게 되는 경로는 1.친구 2.인터넷 3.영화 순서라고 한다.)




어미 '-나'를 얘기하는 김에 내가 전혀 쓰지 않는 말을 하나 소개한다. 

아시나요, 가도 되나요 등의 '-나요'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요'로 끝나는 말은 없다. 그렇다면 '나'와 '요'를 찢어서 찾아보자. 


- 나 : 하게할 자리에 쓰여, 물음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화자가 나이가 든 손아랫사람이나 같은 연배의 친숙한 사이에 쓴다. 

- 요 : ((주로 해할 자리에 쓰이는 종결 어미나 일부 하게할 자리에 쓰이는 종결 어미 뒤에 붙어)) 청자에게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상대에게는 잘 쓰지 않는다. 

사전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그러니까 '-나'는 <보통으로 낮추면서 약간 대우하여 주는 종결형 어미>이고 '-요'는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상대에게는 잘 쓰지 않는 어미>이다. '..나요?'에서 내가 느낀 건 '상대를 존중하는 상태에서 조금 더 친근하게 살짝 하대하여 말하고 싶기는 해서 먹었나?...라고 막상 말을 던지고 보니 상대가 혹시 기분나빠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0.5초 늦게 붙인 ...요?와 같달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지만 한국어기초사전에는 있다. 


-나요 

(동사 또는 ‘-었-’, ‘-겠-’ 뒤에 붙여 쓴다.) (두루높임으로) 앞의 내용에 대해 상대방에게 물어볼 때 쓰는 표현.

저녁을 먹었나요?

출장 가방은 다 싸셨나요?

발표 준비는 다 하셨나요?

교재로 사용할 책은 구입했나요?


동사에 붙는다고 하면 '괜찮나요?'처럼 형용사에 붙은 건 틀렸다는 말일까?  ‘-었-’, ‘-겠-’ 뒤에 붙여 쓰는 거면 뭔가 과거형으로 물어볼 때는 써도 된다는 걸까? 난 국어학자도 아니고 국문학과도 아니고 언제나 질문하고 궁금한 자일 뿐.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에는 '-나요'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이 쓴 질문이 적지 않다. 국어원의 대답을 보면 '-나요'는 종결어미 '나'와 보조사 '요'가 결합한 말로 본다. 하지만 그 구분이 절대적이지는 않고 / 논란의 여지가 있어 / 명확한 답변을 드릴 수 없다는 대답들도 흔히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하니, 나는 십수 년 전부터 그냥 '-나요'를 쓰지 않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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