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지나가지?
오늘따라 네 생각이 난다.
아마도 냉장고 속 음식의 유통기한이 네 애인의 생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너는 담배를 피웠다.
근데도 좋은 냄새가 났던 것 같다. 이제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냥 너는 좋은 냄새가 나는 흡연자였던 것 같다.
십년 정도 지나면 웃으면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땐 그랬지 하면서 다시 친구로라도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십오년이 지난 지금도 만날 자신이 없다. 네가 무섭다. 그렇다고 네가 만나주는 것도 아닐 뿐더러.
죽어버렸으면,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뜬금없는 사람들만 죽어나가고 있다. 그냥 네가 죽어서 가는 그곳에 내 편인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 네가 죽어서도 갈 곳이 없고 죽어서도 어울릴 사람이 없고 죽어서도 계속 비참했으면 하는 마음이 조금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네가 다니는 학교에 찾아갔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나온 너에게 질문을 했었다.
그때 너는 당황을 했던 것 같기도, 준비된 대답을 여유롭게 읊어댔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 나는 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네 생각은 오늘따라 많이 났다. 그것이 냉장고 속 유통기한에서 시작된 것일지라도 나는 네 생각을 많이 했다.
그때 네 애인은 지금 뭘 할까. 그애도 네 생각을 할까.
네 애인은 어쩌면 이름을 바꿔야할지도 모르겠다. 독특한 이름 탓에 계속 눈에 띄고 거슬린다. 이미 바꿨는지도 모르겠다.
네 애인의 위장술이 너보다 더 뛰어나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적어도 그는 비겁한 사내처럼 보이진 않는다.
너는 비겁했다. 지금도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덕분에 나는 병신에서 신이 된 기분이다. 모르던 걸 알게 되었고 말할 수 없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은 더 정의로워진 것 같기도, 조금은 더 세진 것도 같다.
- 나 자존심도 없지 않냐
- 아니, 너 자존심 되게 세.
너는 나에게 자존심이 세다고 말했었다. 그말은 아마도 너는 내가 너를 많이 아끼고 있었다는 걸, 온종일 너만 생각하느라 종일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내 마음을 알았다는 이야기일 거다.
모든 순간이 생각난다.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적어둔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오래도록 괴롭히고 싶다.
살아도 살 수 없고
죽어도 갈 곳이 없도록.
2015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