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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Nov 23. 2020

죽었으면 좋겠지만 지금 죽으면 안 되는 사람

경찰가족이야기

자기 팀에서 제일 경력이 긴 남편은 1년 차 새내기 경찰과 함께 강간범을 잡게 된다.

그는 범인을 유치장에 넣기 전에 소지품 검사를 했고 
새내기 경찰도 더블 체크
유치장 직원들도 트리플 체크하였지만
범인은 마약을 어딘가에 숨기는데 성공하였고 
유치장에서 그걸 한입에 털어넣어 마구씹어먹기에 이른다.

범인이 뭔가를 우걱우걱 씹는 걸 보게 된 남편은  
야 너 뭐 먹어!! 하며 말려보았지만
입에 손가락을 넣었다가는 손가락이 잘릴 거였다.
(매뉴얼에도 그런 행동은 삼가라고 되어 있다고)
여러 사람이 붙어 그를 붙들어봤지만 
이미 꿀꺽
여기서 그는 부상마저 입게 된다. 피를 뚝뚝뚝.

갑자기 범인의 온몸이 하얗고 퍼렇게 변하더니 
아 얘가 여기서 죽는구나, 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뒤늦게 온 의사도 얘는 곧 죽습니다, 라고 판단한 상태에서 
새내기 경찰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옆에서 울고불고 패닉 

병원에 실려간 범인은 다행히(?) 목숨만 붙어있는 상태이고
만약 얘가 죽으면 엄청난 파장이 예상되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등을 아주 오랫동안 조사받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죽어도 될 것 같은 종자이지만 
지금 죽으면 안 된다.

나중에 다 끝나고 죽어야 된다.
이건 경찰 가족인 내 생각이다.

강간범이라고 하니 여자로서 화가 나고 

거기에 마약, 게다가 내 남편을 다치게 했다. 

그냥 죽었으면 좋겠지만 남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을 오래 해왔던 남편도

이때는, 아마도 처음으로 
'음.. 너무 지치는데? 그냥 사표를 쓸까?'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래 그래! 이번에 사표 써! 한국 가서 내가 일할게, 오빠가 애봐라.'라고 내가 대답하자 그는 갑자기 절대로 사표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만큼 육아는 고된 것)

피해자가 어쩌면 임신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강간을 한 강간범을 잡아냈고,
사실은 죽었으면 좋겠고 죽이고 싶지만 
그가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어떻게 해서든 살려놔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걸까.

혹시 경찰들이 가해자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까봐 
(그것은 정의구현이 아니니까)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혹시 경찰들이, 직원들이, 마약이 있다는 걸 알고도 모른 척 한 것은 아닐까,
심층조사를 받게 되어있는 시스템도 억울하겠지만 놀랍다. 

내가 지금은 신에게 
범인을 제발 살려주세요, 

남편이 쓸데없는 조사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기도하지만
이 모든 게 다 끝나면
이제 죽여달라고 기도할 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내가 경찰이 아니라 

경찰 가족밖에 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경찰 가족으로서 옆에서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볼 깡은 있지만 

강간범을 최선을 다해서 죽어라고(!) 살려낼 깡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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