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말 '에끼다'를 처음 들었을 때는 서울 지하철 안내 방송이 떠올랐다.
강남, 강남 에끼데스. (강남, 강남역입니다)
'에끼다'를 MBC 라디오를 통해 소개할 때는 혹시 언중(言衆)이 '애끼다'로 착각하면 어쩌지? 싶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예 '에끼다'가 말글생활에서 사라지고 있는 판에 헷갈리는 것 정도야 뭐, 싶기도 하다.
에끼다「동사」 서로 주고받을 물건이나 일 따위를 비겨 없애다.
국어판에서 '에끼다'는 주로 비표준어 '퉁치다'를 대체할 말로 소개되는데 그동안 '퉁치다'가 사전에 등재되지 않고 있었던 것도 놀랍다. 아마 나이가 얼마 되지 않았나보다. 연식이 좀 되면 등재될 법도 한데 말이다.
- 그때 네가 샀고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이걸로 퉁치는 거다? (비표준어지만 아주 널리 쓰이는 표현)
- 그때 네가 샀고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이걸로 에끼는 거다? (표준어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토박이말)
위아래가 같은 말이다.
퉁치다, 에끼다. 그리고 비슷한 말로 '비기다'도 있다. 비긴다는 말은 스포츠에서나 쓰는 건 줄 알았다. 흔히 알고 있는 그 비기다는 첫 번째 뜻이고, 두 번째 뜻이 새롭다.
비기다
「준말」빅다
「동사」
「1」 서로 비금비금하여 승부를 가리지 못하다.
두 팀이 비기면 다른 팀이 결승전에 진출한다.
「2」 줄 것과 받을 것을 서로 없는 것으로 치다.
서로 꾼 돈이 비슷해서 나는 그녀와 주고받을 것을 비기고 말았다.
그들은 서로 빚진 것을 비겨 버렸다.
'비기다'에 두 번째 뜻이 있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건 준말이 '빅다'라는 것. 내가 저번에 밥을 샀으니 이번에 쟤가 사면 그것이 바로 빅는 일이겠다.
퉁치다, 에끼다, 비기다(빅다)까지 훑어봤다. 이번엔 '엇셈하다'인데 뜻은 다음과 같다.
엇셈하다
「1」 서로 주고받을 것을 비겨 없애는 셈을 하다.
「2」 제삼자에게 셈을 넘겨 당사자끼리 서로 비겨 없애는 셈을 하다.
저번에 내가 얼마를 냈으니까 엇셈하면 이번엔 네가 얼마를 내면 되겠다. 으으 부끄러워라. 이런 말도 사실은 안 친하니까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40년 이상 살아보니 아무리 엇셈을 하고 아무리 퉁치고 에끼고 비겨도 계속 사주고만 싶은 친구들도 있더라. 반대인 경우도 물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