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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Aug 21. 2021

지각


 선생님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은 가방부터 싸느라 정신이 없었다. 반장이 끝인사만 빨리 해주길 기다리며 누가 먼저 교실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가 교문에 도착할 것인지, 교문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는 누가 먼저 건널 것인지 눈치만 보고 있었다. 첫직장에서 첫담임을 맡은 젊은 담임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이해하겠다는 눈빛으로 말을 빠르게 마쳤다. 


  “오늘 청소는 1조 그리고, 6조가 하는 걸로 하자. 반장?” 


  그러자 다른 조와 달리, 남자아이들만 있는 6조 아이들은, ‘와아아아’ 소리를 내며 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들고 교실 문을 빠져나가는 같은 반 친구들을 힘없이 바라보았다. 마치 오랫동안 피나는 훈련을 했지만 매우 억울한 이유로 몇 년에 한 번 뿐인 어느 대회의 출전기회를 박탈당한 듯한 선수들의 표정이다. 그 사이 1조 여자아이들은 더 깨끗하고 좋아 보이는 청소도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청소함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1조 남자아이들은 힘 자랑이라도 하듯이 모든 책상을 교실 뒤로 밀고 있었다. 책상과 의자가 모두 뒤로 밀린 4학년 7반 교실바닥은 떨어뜨리고도 줍지 않은 지우개와 연필, 선생님 몰래 돌렸을 쪽지들, 아이들의 목구멍을 해롭게 할 먼지들로 가득했다. 1조 아이들은 쓸만한 학용품들을 주워 청소함 위 분실함 속에 넣어두고 어느새 찬물에 걸레를 빨아온 아이 하나는 유리창 앞에 섰다. 그리고 운동장을 바라보며 집에 가지 않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 너희 오늘 영어학원 몇 시에 가?!” 

  “오늘 영어학원 가는 날 아냐!!! 이따 밤에 바이올린 선생님 오시면 그것만하면 돼!!!” 


  그 때까지도 6조 남자 아이들은 모여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억울함에 눈물이라도 흘릴 판이었다. 그동안의 패턴을 보자면 1조와 함께 오늘 청소할 아이들은 2조여야 할 텐데 언제나 틀을 깨려 노력하시는 선생님 덕분에 차례가 무시된 것이다. 이제 6조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들을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자 짝도 주지 않고 청소도 시키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때 책상을 뒤로 다 민 1조 남자아이들이 말했다. 


  “너희 왜 청소 안 해? 책상도 우리가 다 밀었잖아. ” 

  “오늘은 우리가 청소하는 날 아냐. 어제도 5조랑 우리가 했어. 너희는 2조랑 해야하는 거야.” 

  “하지만 선생님이 너희 6조랑 하라고 하셨잖아. ” 



  어쩔 수 없는 무기, ‘선생님이 그러라고 했다’ 이 말이 나오자 안 그래도 분했던 6조아이들은 1조 남자아이들이 뒤로 밀어놓은 책상들을 발로 차 넘어뜨리고 씩씩거렸다. 놀란 1조 여자아이 하나가 교무실로 뛰어가 선생님을 불러오고 상황파악을 한 선생님은 화를 내며 작은 폭력을 행한 6조에게 한 달 내내 청소할 것을 엄포하고 교실을 나갔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나이에 비해 덩치도 좋았던 6조조장이 1조조장에게 말했다. 


  “너네 내일 학교에 못 들어올 줄 알아.” 


  다음날, 초등학생 등교 시간이라고 하기엔 이른 아침 여섯 시에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아파트 단지 앞에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1조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서려있다. 한 아이가 자기 집에 많으니까 부모님이 자기가 가져온 것도 모를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주머니에서 우황청심원 두 알을 꺼냈다. 작은 손으로 포장을 뜯고 여러 조각을 낸 후 같은 조 아이들 다섯 명과 나눠 먹는다. 



오물오물 달지도 않은 청심원을 씹으며 삼십분이나 기다렸는데 조원 한 명이 오지 않고 있다. 통통하고 반에서 키도 제일 큰 여자애이다. 그냥 말해도 될 것을 늘 귓속말만 해서 여기저기 적을 만들어 놓고 있는 애였다. 아이들은 그녀를 포기하기로 하고 다함께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교문엔 아직 아무도 없다. 


어제 청소시간 소동 때문에 6조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할 것을 두려워한 1조 아이들이 단체로 함께 평소보다 아주 이른 시간에 일부러 등교를 한 것이었다. 교문 앞에서 키 작은 아이가 말했다. 


  “교실 문이 잠겨 있으면 어쩌지? 우리가 복도에서 기다리다가 다른 애들보다 걔네가 먼저 오면 어떻게 해?” 

  “내가 자물쇠 비밀번호 알아. 일. 이. 칠. 팔.” 안경을 낀 조장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말했다. 

  “소용없어. 문 밑에 열쇠로 따는 자물쇠가 하나 더 있어. 그건 선생님만 가지고 있는 거야. 내가 전에 일찍 와봐서 알아. ”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아 살까지 벌개진 아이가 거들었다. 


  결국 6조 아이들을 마주칠 것을 두려워한 1조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교문을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근처 상가 2층으로 올라갔다. 상가는 이른 시간에도 열려 있었다. 


  ……너희들 보험이 뭔지 알아? 아, 죽으면 돈 주는 거. 누구한테? 엄마한테 주겠지 뭐. 너 그런 거 있어? 응. 너는? 난 몰라. 내가 그런 게 있는 지 없는지. 걱정하지마. 있을 거야. 그건 누구나 다 하는 거야. 얼마 주는데? 몰라. 많이 주겠지. 아마 백 만원 보험, 천 만원보험 이런 식으로 구분되어 있을걸? 우와 진짜 많이 준다. 넌 얼마짜린데? 그건 모르겠어. 얘들아 우리 돈 얘기 그만 하자. 기분이 이상해. 꼭 오늘 죽을 것 같잖아. 앗 누가 온다. 걔네야? 아니야. 경비 아저씨 같아. 



  “이놈들아, 학교는 안가고 왜 거기서 떠들고 있어! 가서 공부해!” 



  기분이 이상해진 다섯 명의 아이들은 상가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재밌었던 얘기, 학원 선생님 얘기, 누가 누굴 좋아하는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잘 지어진 동네 교회 앞에 멈추어섰다. 교회는 종 탑이 하나 있었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종 탑의 계단을 마구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4층 정도 쉼없이 올라갔을까?  종 탑의 옥상 문이 열려 있었다! ‘끼이이익’ 소리를 내는 문을 열고 아이들은 자기들 몸의 몇 십 배는 되어 보이는 종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비어 있는 종 안으로 바람 빠진 풍선 하나가 걸려있었다. 풍선을 빼 보려고 했지만 아이들의 키와 손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오지 않은 여자 아이, 키가 큰 귓속말쟁이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아이 하나가 아까 상가에서 세탁소를 봤다면서 옷걸이를 얻어 오겠다고 했다. 조장은 조원보호차원에서 그녀와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둘은 상가를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종탑의 4층 계단, 상가와 교회의 거리, 상가의 2층까지 힘든 줄 모르고 뛰었다. 그러나 막상 세탁소 앞에 닿자, 말하는 것이 뛰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쭈뼛거리고 서 있는 여자아이를 보자 남자아이는 자기차례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조장인 자기가 리더십을 발휘할 때라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어 세탁소 안으로 들어가 옷걸이 하나를 빌려달라고 말했다. 시커먼 주인아저씨는 아이의 머리통 만한 다리미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하얀 증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옷걸이를 빌려달라고? 왜 이 녀석아. 옷걸이 하나는 가져다가 뭐하게? 심부름이냐?” 

  “심부름은 아니에요. 착한 일을 하는 데 옷걸이가 필요해요. 나중에 꼭 돌려드릴게요.” 

  “착한 일? 그렇지. 옷걸이는 착한 일을 하지. 그거 하나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암. 허허허…….” 


  그제야 시커먼 아저씨도 다리미가 뿜던 증기처럼 하얀 웃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여러 개 가져가도 좋다는 아저씨의 말을 사양하고 빌리는 것이 아니라 선물 받은 거라고 생각하고 착한 일 많이 하라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며 세탁소에서 나왔다. 의기양양하게 옷걸이 하나를 들고 나온 남자아이는 밖에서 기다리던 여자아이 앞에 섰다. 둘은 옷걸이 하나로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들, 아직도 학교 안가고 여기서 놀고 있냐? 다른 애들은 벌써 다 학교 갔는데!” 


  이미 경비아저씨의 호통쯤은 무섭지 않았다. 



  옷걸이 하나를 둘이서 들고 가다가 남자아이가 종 탑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남자아이로만 구성된 6조 아이들의 협박... 1조 아이들을 책임져야한다는 책임감... 학교를 가지 않아서 생기게 될 많은 일들...어쩌면 퇴학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 곧이어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지금 말하지 않으면 평생 말하지 못할 것 같은 말을 했다. 여자아이의 얼굴은 손톱의 봉숭아물과 같은 색이 되었다. 어제 6조 아이들의 협박에도 이렇게 심장이 콩콩거리진 않았다. 남자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종탑 꼭대기에서 한참을 걱정한 듯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올라와!” 


  조원 중 한 아이는 가방 안에 없는 것이 없었다. 풀, 가위와 같은 학용품이 필요할 때 4학년 7반 아이들은 그 애가 있어서 걱정하지 않았다. 그 아인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터져서 쭈그러진 풍선을 포함한 종 탑의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꽉 찬 비닐봉지 만큼이나, 아이들의 마음도 채워지고 있었다.


  “미안해. 그냥 우리끼리 청소해도 되었는데. 내가 괜히 선생님을 모셔왔나봐.” 

  “아니야. 걔네가 잘못한 거지. 우리가 밀어놓은 책상을 발로 찬 건 정말 못된 짓이었어.” 

  “지금 애들은 우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파트 앞에 안 온 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린 착한 일을 했으니까 죽더라도 천국에 갈 거야. 여기 절에 다니는 사람 있어? 있으면 기도 안 해도 돼.” 


  교회 종탑 속의 아이들은 동그랗게 모여 손을 잡고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다. 함께 세탁소 미션을 다녀온 여자 아이의 손을 꼭 잡은 남자 아이의 손에서 땀이 났다. 


  이젠 학교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교문으로 갈 수는 없었다. 시간은 벌써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등교 시간이 끝나면 교문은 닫힌다. 한 아이가 학교 뒤의 개구멍을 알고 있었다. 모두들 교문은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학교 뒷문을 향해 걸어갔다. 체구가 작은 아이부터 책가방을 벗고 구멍을 통과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가방을 받아주었다. 조장은 마지막을 자청했다. 아이들에게 천천히 통과할 것을, 머리를 조심할 것을 당부하며 허리를 구부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여자아이는 자기차례가 되었을 때 남자아이가 정말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애가 그렇게 하라면 정말 조심하고 싶었다. 남자아이는 조장으로써 아이들을 데리고 지금 이 시간에 들어가는 것과 여자아이가 구멍을 통과하다 다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걱정스러운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이 때, 어제 6조 아이들의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보다, 경비아저씨의 호통보다, 세탁소의 뜨거운 다리미보다 더 무서운 - 확실히 어느 것이 더 무서운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 호랑이 교감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짓들이야!!!!” 



  아이들 모두는 한 번 씩 돌아가며 교감선생님의 손 맛을 귀로 느껴야 했다. 아이들의 귀는 교감선생님이 잡아당긴 덕분에 금세 뻘개졌다. 그리고 교장실에 불려가 혼나야 정신을 차리겠냐는 또 다른 협박을 들어야 했지만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귀가 단체로 빨개진 채로 교실 복도로 이끌려 갔고 한참을 운 것 같은 얼굴을 한 담임 선생님과 만났다. 단지 6조 아이들이 무서웠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교실에 들어갔다. 1조가 모여 앉는 책상에 귓속말쟁이가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1조 아이들이 이상하게 단체로 지각한 것에 대해 웅성웅성거렸지만 6조 아이들만은 좀 달랐다. 귓속말쟁이도 너희 어딜 다녀왔냐며 선생님 화났으니까 너희는 이제 큰일났다고 아이들에게 귓속말하느라 바빴다. 



  “조용히!! 수업하자.” 


  수업이 끝난 후 쉬는 시간. 아이들은 1조 자리로 몰려들어 어디 다녀왔냐고 시끄럽게 물었고 아이들은 약속한 것도 아닌데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6조 조장이 조용히 다가와 1조 조장에게만 뭐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그 목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가 책가방을 싸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함께 교실 문을 나오고, 복도를 걷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아침에 지나가지 못한 교문을 통과했다. 둘에게는 여느 때처럼 누가 먼저 교문을 통과하느냐, 누가 먼저 횡단보도를 건너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여자아이는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6조 조장이 뭐래?” 

  “……응, 다시는 지각하지 말래. 별 거 아니었어. 근데, 너 서울아파트 2동 살지?” 

  “어. 왜?” 

  “집에 데려다 줄게.” 


  여자 아이는 자신의 집이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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