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겪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은 언제나 동의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연애시절, 자기 아버지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의 아버지도 내 아버지처럼 간암으로 돌아가셨구나."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저 사람도 내가 보고 겪은 것을 똑같진 않더라도 비슷하게나마 알고 있겠구나, 그러니 날 이해하겠구나"라고 느꼈다.
아빠는 나중에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스스로 용변을 볼 수도 없어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결혼하고 자기 아이 둘을 낳아 함께 기르는 여자에게 또 다시 자기 기저귀 처리를 맡기고 있다는 걸 어쩌다가 가끔 정신이 들 때마다 알았을 거다. 그때마다 당장 죽고 싶어했을 것이다.
스스로 먹을 수가 없어 입술이 바짝 마르고, 그 입에서는 늘 지독한 냄새가 났다. 뭔지 모르게 노란 액체가 입안에서 계속 나왔는데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죽어가면서 몸이 건조화되어 입술이 자꾸 말라 터지고 피가 나는 게 반복되니 바세린 같은 걸 입술에 자꾸 발라주는데 뼈가 되어 앙상한 몸에 입술만 반짝반짝거린다.
복수가 찼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내 나이 14세의 기억이다. 어떤 기억은 터지고 마르고 피가 묻었더라도 반짝반짝 거리는 입술처럼 선명하지만, 어떤 기억은 아예 떠오르지 않는다.
사망 이후에 병원에서 하얀 천으로 시신의 얼굴을 가려놓았다. 학교에서 급하게 소식을 듣고 병실로 들어간 나는 친척들이 말렸지만 그 천을 걷어내고 죽은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보는 거니까 까먹을 까봐 두려워하면서 주름 하나 눈썹 모양, 모공 자국 같은 걸 하나하나 여겨보았다. 하지만 이제 눈썹 모양이나 주름살 같은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시신을 또렷하게 쳐다보고 있는 교복입은 여자애의 이미지만 떠오른다.
모르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많이 만났다. 아는 사람들도 한꺼번에 많이 만나게 된다. 그것이 장례식이다. 친척들끼리, 친구들끼리, 뭐때문인지 다투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하고, 그게 며칠동안 이어진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갑자기 편지를 건네준다. 평소에 내가 밝아서 가족이 아픈 줄 몰랐다며 학교로 돌아가면 엄청 잘해줄 것처럼 말들을 한다.
다른 사람의 장례식을 갔다가 바로 옆 방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아니 네가 왜 여기 있니. 아빠가 돌아가셨니? 난 어른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아빠가 죽었다고 말하지 못했고 휴대폰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니 연락할 곳이 있었어도 제 시간에 연락하지 못했을 거다.
더는 못 쓰겠다.
슬퍼서 더 못 쓰는 건 아니다. 슬프지 않다. 너무 옛날일이라 덤덤하다. 그의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고 솔직히 6년만 더 있으면 나도 아빠가 돌아가셨던 그 나이가 된다. 여태 슬프다면 거짓말인 것 같다. 물론 슬플 때도 있다. 내가 누리지 못한 아비의 사랑이랄까,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없는 것도, 아버지 역할이 필요한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슬프지만 그냥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픈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내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얘기는,
그러니까 "저희 아빠도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라는 말은 그냥 나도 아빠가 죽었다는 정보를 주는 그런 문장이 아니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만 적은 위의 것들과 당장 기억나지 않는 다른 기억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엄청난 압력으로 압축되어 터져나오는 한 마디인 것이다. 네가 겪었을 일을 어쩌면 나도 겪었을 지도 모르고 그래서 어쩌면 내가 너를 다른 누구보다는 조금 더 이해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