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에 끝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니까
심리상담이라고 하면
같은 사무실에 있던 언니가 새로 시작했다는 공부인데?
요즘 내담도 시작했다는 거 같은데 한번 물어볼까?
하지만 언니는 프로페셔널이었다.
아는 사람과는 상담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언니가 이미 내 편이기 때문에 중립적일 수가 없다며
대신 다른 분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이후에 소개는 받지 않았고
최종적으로는 부부상담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남편 회사 앞에 있는 심리상담소를 찾게 되었다.
- 이렇게 먼 곳에 사는 분이 왜 이쪽에서 상담을 받으시죠?
남편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거리라도 가까우면 한번 와보지 않겠다는 말에 상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끝까지 남편은 상담사를 만나지 않았다. 이 분이 우리 얘기를 다 알고 있으니 당신이 길게 이야기 할 것도 없다, 그냥 만나만 보라고 해도 끝까지 거절하였다.
그렇게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10회권을 끊으면 조금 더 저렴하다는 말에 그것도 끊고
추운 겨울에 지하철을 타고 덜컹덜컹 상담을 다녔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는 아이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대기실에 아이를 놔두고
1시간 동안 심리상담을 다닌 것이다.
- 엄마, 안에서 뭐했어?
- 응, 엄마 일했어.
거짓말을 하면서.
해외에 살던 우리 부부는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집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은 나에게 아이와 친정에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다같이 비행기를 타자고, 함께 해외짐을 정리하고 함께 한국에 들어오자는 말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혼자 하고 싶다고, 빨빨거리고 뛰어 다니는 어린 아이와 내가 없어야 더 빨리 진행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걸 믿었고 그렇게 아이와 먼저 한국에 들어와 친정에 살기 시작했다.
그때 끝까지 같이 있었어야 했다.
몇 주 뒤, 외국인 신분인 남편이 짐정리를 끝내고 한국에 들어왔다. 지금 같지 않은 분위기였기에 외국인은 호텔격리를 해야 되어서 공항으로 데리러 나가는 일도 할 수 없었고, 잠깐 만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한국 번호도 서로 없는 상황이라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챗이 가능한 앱을 통해서만 연락할 수 있었다.
그런데 2주 격리가 끝나고 남편은 우리가 있는 친정으로 오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곳으로 오지 않고 갑자기 자기 집으로 갔다. 우리는 한국 시댁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분들은 결혼식도 참석하지 않았다. 반대를 했는데도 우리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지난 10여년간 손절하여 살고 있었다. 아이를 낳았을 때도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갑자기 남편과 시댁을 화해모드로 변화시켜준 모양이었다. 지구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들 한 번 만나보자는 심리였는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남편이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갑자기 별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주말마다 만났으니 주말부부라고 포장하던 별거였다.
해외에서 짐을 정리할 때도 '한국에 가면 어디서 살려고 그러냐'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침묵은 자기 엄마를 만나봐야 알 것 같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집열쇠를 쥐고 있는 엄마가 자기에게 열쇠를 줄 건지 말 건지를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다 이제와 보니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시댁은 여전히 나를 미워하기 때문에 지금은 만날 수 없다고 했고
아이는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안 되지만. 아직 시댁에서 나를 만날 준비가 안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 친정에서 아이와 함께 살자는 내 말은 듣지 않았다.
자기가 혼자 지낼 공간을 시댁에서 제공해주었는데 뭐하러 그러느냐는 거였다.
그렇게 나는 출입금지이지만 남편과 아이는 들어갈 수 있는 공간들이 한국에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남편이 있어서 심리상담을 시작한 것이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라는대로 하고 시키는대로 하면 되는 건데
내 기준이 안 된다고 하고, 내 도덕과 가치관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 '아니'라고 하기 시작했더니 불행이 찾아오는 느낌이었다.
상담사는 나를 만나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했다.
나는 실제로 만나면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 그럴 거다.
나는 내 불행도 기깔나게 코미디화 해서 재미있게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게 나의 방어기제이다.
상담사는 그런 눈먼 삶을 어떻게 살아왔냐며
똑똑해보이는데 거기서 왜 나오지 못하냐며
대놓고 이혼하라는 말까지 했다.
아는 동생이라면 쫓아다니면서 말렸을 거라고.
하지만 아직도 내가 남편을 많이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남편 회사 앞으로 상담을 다니는 것도 그런 게 아니겠느냐며.
이혼을 하기 싫어서
그때부터 상담을 다니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옮기지도 않았다.
똑같은 이야기를 들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