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예 Jan 25. 2017

우리는 마음이 아파 이곳에 왔다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21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 곳의 수도원 투어를 마치고 파티마에 도착했다. 성지순례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앞서 들렀던 세 곳의 수도원들보다도 파티마가 훨씬 더 알아주는 곳이다. 바티칸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순례지이자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몇 안되는 성모 발현지이기 때문이다.


1917년 5월 13일, 파티마의 목동이었던 루시아와 프란치스쿠, 히야친타는 밝게 빛나는 여인의 형상을 목격했다. 여인은 자신이 묵주의 성모이며 앞으로 다섯 번 더, 매월 13일에 나타나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예고했다. 이후 10월 13일까지 성모 마리아를 목격한 사람은 7만여명에 이르렀으며 마지막 성모 발현일인 10월 13일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태양이 빙글빙글 도는 등의 현상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대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으로 프란치스쿠와 야친타는 일치감치 죽고 루시아 혼자 살아남아 수녀가 되었다.

파티마에서는 세 목동을 상징하는 기념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성모 마리아를 닮아 순백으로 지어진 파티마 대성당 안엔 여러개의 예배당이 있고, 각 예배당에서 돌아가며 마치 릴레이처럼 미사를 본다. 밤새도록 진행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녁 꽤 늦은 시간까지 미사가 이어지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던 자리에 지어진 예배당엔 야친타와 프란시스쿠의 무덤이 있다.

△ 성모가 발현한 장소에 세워진 예배당. 일찍 죽은 두 목동의 무덤이 있다.


우리의 생각보다 성당은 작았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자면 컸지만 그래도 바티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게다가 파티마 대성당은 1953년에 완성된, 비교적 요즘 성당이어서 건축양식도 그 구조도 무척 현대적. 여지껏 봐왔던 오래된 성당들과는 분위기가 무척 달랐다. 


유럽의 많은 성당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웅장하고 우아하고 화려한 공간이라면 누가 억지로 전도하지 않아도 절로 신앙심이 생겨날텐데 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다. 하지만 성 삼위일체 성당은 그저 넓고 심플한 구조의 예배당일 뿐이었다. 어찌보면 한국의 뻔한 예배당을 닮은 것도 같다. 고풍스럽고 섬세한 탈랴 도랴다로 꾸며진 포르투갈의 다른 예배당들에 비하면 횡댕그래하기가 무척 어색할 정도여서 거의 무無에 가까운 공간처럼 보였다. 그런데 유독 이 예배당에선 마음이 움직이는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동안 마주했던 화려한 공간에선 그 공간 자체에 정신이 팔려 진심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성 삼위일체 성당

△ 공산주의를 몰락시켜주신 성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독일에 거주하던 포르투갈사람들이 보내온 베를린 장벽 조각. 성당 한쪽에 벽 조각이 있다는 것도, 공산주의를 운운하는 것도 다소 이질감이 들긴한다.


파티마는 몸이든 마음이든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굳이 덩그러니 성당 하나 뿐인 이 시골 동네에 힘들게 찾아올 이유가 전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성 삼위일체 성당에서부터 성모 발현 예배당까지 이어진 돌길을 무릎을 꿇고, 무릎으로 걸어 성모 마리아를 만난다. 그 정도의 간절함이 있는 사람들만이 여기까지 굽이굽이 찾아오는 것이다. 병이 나았다는 사람도, 안식을 찾았다는 사람도 물론 있으나 사실 정말 의학적으로 뭔가 회복된 사람은 아주 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무언가 깨달음은 얻지 않았을까 싶다. 이곳은 그런 공간이다. 


우리는 마음이 아파 이곳에 왔다. 아직도 마음이 복잡해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은 모르기에 요점이 뭔지도 모를 횡설수설한 기도를 드리고 일어섰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지만 타오르는 촛불들은 꺼질 줄을 모른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리도 많다니, 슬픈 일이다. 그 사람들은 알까, 당신들 때문에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다가 결국은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걸. 여기에 와서 당신들 대신 촛불에 불을 붙이고 눈물을 흘린다는걸.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4. 2017년은 파티마에 성모가 발현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이야기와 파티마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기사로 발행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누엘리노의 창문을 바라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