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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의 어려움, 온느씨의 스파냥찻잔

by 나예

세상 모든 그릇은 다 누군가가 만든 것이긴 하겠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를 클리어하게 알 수 있는 그릇은 더욱 특별하다. 내가 만들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뻔히 아는데 건성으로 대충 만들고 사기를 쳐서 팔아넘길 수는 없을거라고, 한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열과 성을 다해 만들었을거라 믿기 때문이다. 너무 희망회로를 돌리는거 아니냐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내 이름이 붙은 창작물에 대해 이런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얼굴이 팔린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나만의 믿음에 기반, ‘누가 만들었는지 안다’는 사실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에 개인 창작자들의 핸드메이드 도자기들도 제법 갖고 있다. 이런 애들은 대량 기계 작업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특유의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때로는 마이너한 취향이 티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유명 작가의 값비싼 예술품들인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런 류에는 관심이 없고 간수할 능력도 못되어서 주로 앙큼하고 깜찍한 것들 위주로 갖고 있다. 특히 고양이를 모티프로 한 것들이 많다. 고양이와 함께 살며 새롭게 알게 된 점은 개인 창작의 세계 안에는 고양이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이 바닥에서는 그 어떤 동물도, 하다 못해 강아지도 열세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 특유의 감성 같은 것이 개인 창작의 어딘가에 닿아있는 모양이다.


내가 유독 귀여워하는 애는 찻잔 한가운데에 고양이가 들어앉아 있는 애다. 잔을 채우면 고양이가 온천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된다. 고양이의 머리 위에는 수건도 한 장 올라가 있다. 이름부터가 ‘스파냥찻잔’이다. 솔직히 이 잔이 사용하기 편한 잔은 아니다. 잔 한가운데 커다란 돌기가 불쑥 올라온 꼴이니 음료를 마시다보면 이 고양이가 자꾸 내 코를 들이박는다. 내 코를 지키려면 일정 각도 이내에서 홀짝홀짝 마셔야만 한다. 설거지를 할 때도 좀 더 조심스럽다. 식기 건조대에 걸칠 때도 세심하게 걸쳐야 하고 잔을 보관할 때도 잔을 쌓아 겹쳐둘 수가 없다. 덕분에 그릇장을 열 때마다 매번 ‘언제 목욕물을 채워주려나’ 하며 기다리는 고양이의 눈치도 봐야 한다.


그럼에도 잔을 채울 때 고양이가 익사하는 모양새가 되지 않도록 적당 수위까지만 채우는 것, 오늘은 어떤 수색의 온천으로 연출해줄까 궁리하는 것, 뜨끈한 물 속에서 몸을 지지고 있는 고양이의 표정을 살피는 것 등은 이 잔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이다. 또한 찻자리에는 다우, 다른 말로는 차총이라고 하는 친구가 함께하는 것이 일종의 재미인데 이 역할을 이 녀석이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걸 다 떠나서 일단 너무 귀엽다. 귀여운 것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나에게 귀여움은 곧 힐링이다. 합리적인 사고나 이성의 끈 따위는 가뿐하게 찢어발기는 것이 바로 귀여움 아닌가!


뜨거운 녹차를 후후 불어가며 지긋이 눈을 감은 채 입욕을 즐기고 있는 고양이의 얼굴을 살펴본다. 샘플을 보고 구매했지만 그 때 그 고양이와 내 앞의 이 고양이가 100% 같다고 할 수는 없다. 핸드메이드 제품이기 때문에 내가 본 고양이보다 이 고양이의 눈 꼬리가 조금 더 길 수도, 미간이 좀 더 멀 수도 있다. 털의 얼룩 무늬도 다를 수 있다. 물론 창작자가 고수일수록 이 갭은 줄어든다. ‘연출된 이미지이므로 실제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커버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내가 수긍할 수 있는 범위는 꽤 넓다고 생각한다. 고양이가 미더덕으로 바뀌어오지않는 한은 아마 수긍할 것 같다. 그래도 샘플을 보고 구매를 결정한거니까 최대한 샘플과 유사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사실 이건 스파냥찻잔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기대하고 예상한 것과 다른 결말을 맞았을 때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라 봐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이 범위의 베리에이션은 무척 다양하다. ’이 정도 때문에 이렇게까지한다고?‘하는 경우도 봤고 ’이 지경인데도 괜찮다고?‘하는 경우도 봤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범위가 있고, 그것은 곧 100개의 세상이기도 하다. 지척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와중에 다들 엇비슷하게 사는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다. 다들 내 마음 같지는 않다는 점이 바로 세상살이의 즐거움이자 어려움일지도 모른다. 너무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일은 때때로 서글프고 때때로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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