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윌리엄과 메리>
이전에 집중의 방법 중 하나로 "낭독"을 얘기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건 바로 예측이다. 예측 또한 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마치 탐정이 된듯한 느낌으로 이야기 속 모든 증거를 끌어모으면서 뒷이야기가 어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바탕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예측하며 읽기의 기본인데, 대강 슥 보는 것이 아니라 복선이 될 수 있는 단어와 대사 등을 꼼꼼히 눈여겨 읽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읽기는 책의 바깥에서 방관하는 자세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예측'에 대단한 추리력이나 직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축약해서 카드뉴스 형태로 만든다고 하면 어디에서 끊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그리고 그렇게 끊었을 때 과연 어떤 댓글이 달릴까?를 상상해보는 것 또한 비슷한 계통의 활동일 수 있다.
그런데 문해력을 위해 책을 읽는다면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하나 있다. 그건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 결말이 어떻게 튈 것인가에만 집착하다보면 많은 부분을 놓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예측하며 읽기‘를 할 때도 그저 얼마나 충격적으로 끝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는 행위가 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대개 재미난 이야기는 '기막힌 반전'을 바탕으로 가는 경우가 많고, 짧은 분량으로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하는 단편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한데 그렇다고 해서 ’예상을 깨는 방향으로의 결말‘에만 집착할 경우, 개연성을 따지며 논리적으로 읽는 일이 잘 안될 수 있다. 결말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는 것은 앞서 읽은 내용 중에 복선(=떡밥)이 깔려 있었고, 이 부분을 나름대로 잘 캐치했다는 뜻이기도 하니 단편 읽기를 통해 문해력을 기르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반가운 신호라고도 볼 수 있다. 이야기의 말미에서 내 예측이 맞으면 자신감을, 내 예측이 틀렸을땐 놀라움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읽기에 있어 또 하나의 재미기도 하다.
로알드 달의 작품들은 이런 방식으로 읽기에 딱 좋다. 로알드 달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마틸다> 등으로 아이들에게 친숙한 작가인데, 워낙 이쪽으로 유명하다보니 로알드 알을 좀 삐딱하고 시니컬한 동화 작가 정도로만 아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로알드 달은 짧은 이야기가 주는 특유의 속도감과 기깔나는 반전으로 독자를 끌고 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수준이 낮다거나 유치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면 그런 것들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로알드 달의 작품 중에는 그로테스크(생각해보면 <찰리와 초콜릿 공장> 안에서도 신체가 변형되고 훼손되는 등의 그로테스크한 일들은 계속 벌어졌다)하거나 아주 교활하고 악랄한 면이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등 좀 더 '으른의 맛'에 가까운 작품도 많다.
로알드 달의 단편 중 <윌리엄과 메리>이라는 이야기를 한번 보자. 칵테일을 마시는 자잘한 일부터 아이를 낳는 큰 일까지 평생을 남편 윌리엄의 억압 속에 살아온 메리. 남편의 죽음 후 메리는 한 통의 편지를 전달받는다. 본인이 죽더라도 과부답게 똑바로 행동하라는, 술도 담배도 안되고 페이스트리 빵도 먹지말고 립스틱도 바르지 말라는 사소하면서도 강압적인 유언. 그리고 연구팀이 윌리엄 본인의 뇌와 안구 한 개를 두개골에서 적출, 인공 심장과 연결해 사망 전의 온전한 상태로 유지할 것이니 실험 성공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편지다. 메리는 실험실을 방문하여 실험이 성공했음을, 링거액으로 가득찬 커다란 대야에 담긴 남편의 뇌와 안구가 제기능을 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메리는 불현듯 남편에게 애정을 느끼며 남편의 뇌와 안구를 집으로 가져가겠다고 연구팀에 선언한다.
이 이야기는 이후 어떻게 전개될까? 메리는 왜 갑자기 남편의 뇌와 안구를 집으로 가져가겠다는 그로테스크한 선언을 한 걸까? 죽고 못살았던 불멸의 연인도 아니고 그저 평생 자신을 옭아맨 남편을.. 여기서 메리가 애당초 고어한 취향이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풀린다면 다소 개연성이 떨어진다. 힌트는 부부의 과거, 그리고 윌리엄의 마지막 편지 속에 있다.
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으며, 눈으로 감정을 표출할 수도 있는 윌리엄, 하지만 그게 다다. 움직일수도, 막말을 퍼부을 수도, 분노를 무기로 아내의 행동을 제어할 수도 없게 된 그의 앞에서 메리는 드디어 당당하게 담배를 꺼내 문다.
"노려봐도 소용없어요. 아무리 노려봐도 소용없다구요. 이제부터 당신은 내 애완동물이에요. 나 메리가 하라는 대로 하는거죠. 알아들어요?"
이제는 불평도, 비난도 없을 테고, 끝없이 늘어놓던 훈계도 없을 테고, 지켜야 할 규칙도 없고, 담배를 못 피우게 하지도 못할 테고, 셔츠를 빨 필요도, 다릴 필요도, 식사 준비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 메리는 인공 심장의 전원 버튼 하나로 남편의 생존마저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해오며 평생에 걸쳐 아내를 ‘애완동물’ 취급하며 숨통을 조여왔던 남자에게 이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 있을까? <윌리엄과 메리>는 이렇듯 그로테스크하지만 깜찍한 복수극이다.
<목사의 기쁨>이라는 이야기도 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읽기에 꽤 어울린다. 보기스는 시골 촌구석을 돌며 오래된 살림살이를 매입해 처리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살림살이들은 주인이 값어치를 몰라 아무렇게나 쓰고 있는 고가구와 미술품 등으로, 시골집에서 대충 쓰는 개밥그릇이 알고보니 엄청난 값어치의 청화백자였다는, 하지만 주인은 그 값어치를 몰라 개밥그릇으로 쓰고 있었던 그런 것들이다. 보기스는 그런 물건들을 찾아 헐값에 매입해 부자들에게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는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시골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선량한 목사인 척 위장까지 하고 다니는 것이다. 어느 날 보기스는 한 시골 농가에서 18세기 영국 명품 가구를 발견하고 흥정에 들어간다. 티를 내면 주인이 값을 높게 부를까 보기스는 이 가구는 형편없는 모조품이라고 비하하며 본체는 필요 없고 다리만 필요하니 다리 값만 쳐주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가구의 진짜 값어치를 모르는 주인은 이에 응하고 보기스가 (가구를 싣고 갈) 차를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 '어떤 일'이 벌어진다.
대강의 결말이 예상되는가? 보기스가 원하는 대로 이 가구를 순순히 얻어가지 못할 것임은 대략 감지가 됐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본체는 필요 없고 다리만 필요하다'는 대사가 복선이다. 커다란 가구가 차에 실리지 않으면 거래가 취소될까 우려한 주인은 보기스가 돌아오기 전, 가구를 모두 도끼로 깨부수어 장작으로 만들고 다리만 남긴다.
로알드 달의 단편은 인간의 오만함을 한껏 드러낸 캐릭터들의 잔치라고도 볼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 욕망을 가진 오만한 인간들은 충돌하다 제 꾀에 걸려 넘어진다. 로알드 달은 그것을 추잡스럽거나 역겹지 않게 그리면서도 막판에는 통쾌하고 짓궃게 꼭 한 방을 먹인다. 그 '한 방'은 때로는 우리의 기대감에 못 미쳐 아쉽기도 하고, 때로는 방심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의 뒷통수를 뿅망치로 '뿅'하고 내리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대개는 우스꽝스러운 결론을 맞지만 촌철살인스런 부분이 있어 가볍게 읽을 수 있음에도 결코 경박하지 않다.
오랜 기간 읽기에 매진하게 하는 힘은 재미에서 온다. 지식 습득, 문해력 향상 등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읽더라도 1차는 반드시 재미여야 한다. 집중해서 읽고 집요하게 읽고 집착하듯 읽으려면 '책을 읽는 일은 골치아프고 따분한 일'이라는 선입견을 깨야하는데 그것 또한 재미만이 해낼 수 있다. 골치아픔과 따분함을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깜찍한 반전으로 상쇄할 수 있음을, 더불어 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 읽어나가는 행위의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