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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Feb 11. 2017

꼭 한 번 쯤은, 아줄레주 박물관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29

포르투갈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마음에 깊이 남은 것은 아줄레주였다. ‘판판하게 갈아놓은 작은 돌’이라는 의미의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특유의 타일 장식을 일컫는 말이다. 아줄레주에는 다양한 색상이 쓰이지만 대표적인 것은 흰 바탕에 파란색으로 그림을 그려넣은 것이다. 이는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백자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청백의 아줄레주는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출렁이는 푸른 바닷물을 한껏 퍼다 담아놓은 것 같기도 하고 흰 구름과 청명한 하늘빛이 어우러진 모습 같기도 했다. 섬세한 무늬로 수놓인 집들 사이를 걸을 때마다 아기자기면서도 고색창연한 그 빛깔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상태가 엉망인 곳도 있었고 누군가는 촌스럽고 후져보인다고도 했지만 그저 내 눈엔 모두 운치 있어 보였다. 이런 빛깔을 꼭 끌어안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그들의 삶이 무척이나 부럽기까지 했다.

외벽도 아줄레주로 꾸며진 곳이 많다


리스본이 아니어도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어디에나 있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질리도록 아줄레주를 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조금 더 체계적으로 아줄레주의 세계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역시 박물관이 답이다. 그렇게 우린 아줄레주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줄레주 박물관은 예전엔 수도원으로 쓰였던 곳이라 관람 동선이 그다지 효율적이라곤 할 수 없지만, 힘들 정도로 발품을 많이 팔아야하는 곳은 아니었다. 도리어 반대로 생각하면 수도원다운 회랑, 왕가의 초상화, 금으로 꾸민 화려한 제단 등을 예전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은 허여멀건하고 네모반듯한 뻔한 박물관들에 비하면 아주 큰 장점일 것이다.


이 곳엔 15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아줄레주들이 전시되어있으며 제작 과정 등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되어있다. 단순한 무늬의 반복에서 시작되어 카펫을 닮은 형태로 발전했다가 하나의 타일에 하나의 소재를 그리기도 하고 모자이크처럼 조각조각을 모아 큰 그림을 완성하기도 하는 등 그 표현 양식은 꽤나 다양했다. 말 그대로 편평한 것도 있고 올록볼록하게 양감이 있는 것도 있었는데 진흙으로 빚은 납작한 판때기가 점차 화려한 아줄레주로 변해가는 모습도, 컨버스에 그려진 그림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점도 모두모두 좋았다. 

흔히 아줄레주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이런 푸른 계통의 것들이다
제단 장식용으로 쓰였던 <목동들의 경배>
사람들을 모두 원숭이로 바꿔 그린 일종의 풍자 작품
카펫을 닮은 반복적 형태

△ 아줄레주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설명

△ 한 장의 타일에 하나의 완결된 그림을 넣는 형태

△ 양감이 생겨났다


개인적으론 “모자 장수”를 주제로 한 연작 아줄레주가 특히 재미있었다. 빈털터리로 시골에서 상경한 청년이 모자 장수로 성공한 이야기를 담은 것인데 모자 장수 본인의 집 외벽을 꾸미기 위해 주문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이는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아줄레주가 교회나 귀족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대중화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라고도 한다. 


현대로 올수록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아줄레주들이 많아지는데 이는 실제 길거리의 표지판이나 담벼락, 지하철 역 등에서 간간히 볼 수 있다. 포르투갈의 아줄레주는 과거의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지속되고 있는 하나의 문화라는 점에서 꼭 한 번쯤은 아줄레주 박물관을 둘러볼 것을 권하고 싶다.


포르투갈의 아줄레주는 건물의 외부, 내부 구분없이 사용되며, 애써 찾지 않아도 내부를 아줄레주로 장식해둔 식당 등도 제법 많아 접할 기회도 많다. 익숙해지기 전에는 마치 욕실에서 밥을 먹는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푸르스름한 아줄레주들이 그립기만 하다. 내 마음이 이렇게 될 것임을 진작에 알았기에 언제든 들춰볼 수 있도록 아줄레주를 주제로 한 사진집도 한 권 구매했다. 

△ 모두 찾아다니며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아줄레주는 장식적인 용도를 떠나서도 꽤나 유용한 녀석일 것 같다. 벽지나 카펫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냄새가 베어들지도 않는다. 더러워져도 적당히 휙휙 닦아내면되니 관리하기도 쉽다. 더위와 습기를 막아주면서도 비슷한 성격의 대리석 자재보다는 훨씬 저렴해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적다. 이쯤 되면 거의 혁명 수준인데?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4. 아줄레주 박물관이 아니라 아줄레주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일부 흡사한 내용으로 오마이뉴스 기사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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