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37
이미 한 차례, 코르메시우 광장에서 어디까지가 강이고 어디부터를 바다로 치는지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동네에선 벨렘부터를 바다로 친다고 했다. 벨렘이란 동네는 연속적으로 물이 흐르는 곳을 일부러 불연속성을 띄도록 딱 끊어 놓은 곳이다. 그러니까 제로니무스 수도원 못지않게 알아주는 벨렘의 랜드 마크인 ‘벨렘 탑’은 강의 끝 물, 그리고 바다의 초입에 우뚝 선 일종의 톨게이트일지도 모른다.
벨렘 탑은 전쟁이 많던 시절에는 요새와 망루, 그리고 정치범 수용소로 쓰였다가 전쟁이 끝난 후엔 세관으로 쓰이고, 얼마 뒤엔 우체국으로도 쓰이고 더 이후엔 등대로 쓰이는 등 온갖 변신을 겪고 나서야 뒤늦게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벨렘 탑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대항해시대에 미지의 대륙으로 향했던 이들의 여정이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커다란 의미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 겉모습도 한 몫을 거들긴 했겠지만.
우리가 탑을 찾은 날엔 날씨가 무척이나 궂어서 바람도 많이 불고 물살도 거세었다. 탑으로 입장하기 위해선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야하는데 다리 위까지 물이 넘실거려 신발과 바지의 밑단이 모두 젖어버렸다. 하얀 빛을 내는 귀부인이 허리춤 정도부터 드레스 자락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벨렘 탑은 종종 ‘테주 강의 귀부인’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 날 우리가 마주한 탑은 그저 음산하고 축축할 뿐이었다.
탑에 입장하고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은 포대와 대포들인데 대포들이 생각보다 작아서 마치 모형 같았다. 한 층 아래는 벨렘 탑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지하 감옥인데 ‘지하 地下’ 보단 ‘수하 水下’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밀물 때가 되면 감옥에 물이 차서 수감자들은 감방안에서 최대한 높은 곳에 매달려 스스로 목숨을 부지해야했다고 한다. 끔찍한 죄를 지었으면 끔찍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곳이 감옥으로 쓰였던 시절엔 정치범이나 전쟁 포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자 애썼던 혁명가 등이 수감자 중 다수였다고 하니 씁쓸한 일이다.
잔인한 지하 감옥과는 달리 탑의 윗부분으로 올라갈수록 재미난 볼거리들이 많아진다. 위로 오르는 계단은 무척 좁아 정해진 신호에 따라서만 오르내릴 수 있는데 가장 독특한 구경거리는 바로 요 코뿔소 조각이다. 많이 닳아서 둥글둥글해졌지만 코뿔소인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리스본의 코뿔소는 인도에서 온 선물이었다. 한동안 리스본에서 지내던 코뿔소는 이번에는 교황에게 선물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교황에게 가던 중 배가 침몰해 코뿔소는 죽고 말았다고 한다. 코뿔소는 본디 수영을 잘 하는 동물인데, 너무 꽁꽁 묶어놓아서 죽은 것이니 참 억울하고 어이없이 죽었다. 훗날 벨렘 탑에 영원히 자신의 모습을 남기긴 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고깔모자를 닮은 화려한 장식의 포탑들과 회랑을 구경하고 발코니에 올라보니 강바람이라고 해야 할지, 바닷 바람이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세찬 바람이 마구 불어온다. 회랑의 정면엔 성모상이 큼지막하게 놓여있어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진다. 고된 여정을 마치고 리스본으로 귀환하던 선원들은 멀리서 이 탑과, 이 탑의 성모상을 보고 얼마나 안도했을까. 객지에서 겪었을 고난과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쁨, 당장 달려가 만나고픈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며 마침표를 찍는 순간, 그 모든 벅찬 감정들을 안아주었을 성모상의 모습은 오늘도 그저 안온할 뿐이다.
늘 그랬듯이.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