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안다는 착각

완벽주의 워킹맘의 취향 사수 에세이

by 헤이란
엄마, 뼈마디가 불룩 튀어나오면 난 불편해


아이는 거실에 놓인 물건들을 치우는 내 손목을 보며 말했다.


도대체 그게 왜 불편하지. 뼈마디가 튀어나와도 어쨌든 내 뼈다귀인데 왜 네가 불편해.

난 한마디 하려다 꾹 참고 혼자 중얼거렸다.

아이가 유독 에 민감해하는 게 처음이 아니었기에.



아이는 뼈가 골절되어 두 번이나 깁스 생활을 했다.

한 번은 놀이터에서 넘어져서, 다른 한 번은 실내 놀이공간에서 낙상하여 두 번 모두 오른쪽 팔 부위 골절이었다.



첫 번째 사고는, 아주 예상치 못한 사이에 일어났다.

지금도 아이는 억울하다는 듯 가끔씩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린다.

놀이터에 아주 작은 트램펄린이 있어서 그곳에 발을 디딘 뒤 점프를 하여 착지하는 게 아이의 의도였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 중에서도 작은 편이었던 아이는 발을 디딘 순간 중심을 잃었고 오른팔로 땅을 짚으며 넘어졌다. 딱히 외상이 없었기에 난 그저 아이가 조금 놀라서 우는가 보다 여기며 평소와 같이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러한 나의 대처는 공소시효 없는 평생의 원망 거리가 되었다.

아이는 오른팔을 움직일 순 있었으나 밤새 불편해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날 결국 오른팔 골절로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밤새 끙끙대는 아이에게 나는 엄살 피운다며 나무랐다.

엄마 오른팔이 좀 이상해요. 불편해요.

아프다는 말 대신 여러 문장으로 내게 어려움을 토로했고 나는 그저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실은 나 또한 초등학생일 때 이 상황과 매우 유사하게, 오른팔 골절 부상을 입은 적이 있어 골절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오른팔에 부러진 순간 너무 아프고 팔이 퉁퉁 부어 전혀 움직일 수 없었기에, 상대적으로 팔의 상태가 괜찮아 보여 아이의 골절을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나의 판단은 나의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나의 경험만으로 아이의 경험을 대처한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이는 한동안 꽤 억울하다고 이야기했다.

난 그 억울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애썼다.

아이의 감정에 이유를 묻지 않으니 아이의 단어를 듣는 것이 한결 수월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더 이상 아프지 않으며, 다만 뼈가 튀어나온 모습을 보면 불편하다고 했다.


난 아이의 말을 곰곰이 따라가 보았다.


과거에 역시 두 차례 깁스를 했던 나 또한 골절이 완치된 후에도 한동안 뼈가 부러지는 망상을 했다. 트라우마였다.


골절에서 발생하는 통증, 부어오름 등의 증상들은 비교적 빨리 호전되었지만 뼈가 뚝 부러지던 그 순간의 느꼈던 공포는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난 어른이 되어서도 몹시 피곤한 날엔 치아나 뼈가 부러지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나의 의식 저편에서 뼈가 부러지는 고문을 치르고 나면 나의 큰 아픔이 드러나고 이제 더 이상의 최악은 없으리라는 상대적 안도를 했다. 꿈에서 깨면 수십 초간 내 팔을 어루만지며 돌아온 현실에 감사했다.


아이의 마음에 아마도, 단단한 몸의 일부가 물리적으로 단절되는 공포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난 내가 겪는 트라우마가 아이의 것과 똑같다고 여기는 실수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왜 불편하냐고 묻는 대신, 그럴 때 무엇을 하면 마음이 편안 해지는지로 고쳐 묻기로 했다.


상처는 속살이 나고 피부가 모두 아물어도 근육, 뼈, 혹은 마음속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있다.

어떤 상처는 숨어있길 좋아한다.

숨어서 영영 찾지 못하는 상처도 있다. 몸에 난 상처뿐 아니라 마음에 난 녀석도 짓궂기는 마찬가지다.


어릴 적,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날이면 엄마는 집구석구석을 열심히 치우고 버리셨다.

아마도 어딘가 숨어 들어갈 가족의 상처를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내려고 그러셨을까. 그러다 보면 평소처럼 물건들도 가족들도 원래 있던 제자리로 돌아갔다.


상처가 빨리 낫는 법은 없다.


그저 상처가 나을 때까지

가던 길을 걷고 키우던 꽃을 계속 가꾸며

살던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방법만 알 뿐이다.

숨은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살아가는 것,

그게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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