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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Aug 20. 2023

여행을 간다면, 아이와 종이

필사적인 필사일기 - <어린이의 여행법> 이지나 지음

그 후로도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가방에 즐거움을 넣을 자리를 남겨둔다. 아무리 작은 가방을 가져가더라도 언제나 작은 여유 하나쯤은 담을 수 있다. 얼이와 둘이서 떠난 방콕에서도 우리는 손바닥만 한 팔레트와 색연필을 꺼내서 그림을 그렸다. 쿠바에 갈 때는 들고 다닐 수 있는 조그만 체스를 가지고 갔다. 스리랑카에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시칠리아에는 비눗방울을 들고 갔다. 종이는 가장 놀라운 장난감이다. 얇고 가볍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거나 빙고를 하다가 종이를 접고 오리고 구기고 찢어서 온 세상을 만들었다.

<어린이의 여행법> 이지나 지음 "인 마이 백"




아이와 다니는 날은 항상 백팩을 챙겨 메고 나간다. 대부분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한 물건들인데 색연필과 공책, 읽을 책 한 두 권, 애착 인형 혹은 장난감은 필수품이다. 특히 이동 중에 가방에 넣어 온 물건들을 꺼내는데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고 책을 읽고 그러다 인형으로 역할놀이를 하면 어느새 도착지에 와있다.

여행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예측 불허의 상황들이 두렵고 온전히 내가 기대한 만큼 즐기지 못하면 화가 나서 '망한 여행'이라고 이름 붙이면 다시 여행을 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태어나니 나의 두려움보다 아이의 호기심이 더 소중해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없었다면 챙기지 않을 물건들을 넣고,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은 곳들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기차에서, 잠시 쉬어 가는 카페에서 여정마다 운 좋게 만난 아름다움과 불쑥 찾아오는 그리움을 종이에 담았다. 아이는 여행을 떠나기 위한 나의 첫 번째 체크리스트 였고 종이는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한 마지막 체크리스트였다.  


(아이와 기차에서 재미로 그린 그림들 중에, 왕할머니에 대한 만화가 있어 살짝 공개해 봅니다. "못그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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