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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Aug 14. 2023

이토록 소박한 꿈이여

필사적인 필사일기 -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그게 왜 소박하노. 대단한 거지. 내 주변에서 꿈을 이룬 사람은 니밖에 없다."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글을 써서 돈을 벌기만 하면 되는 삶.

그것이 스무 살의 내가 간절히 꿈꿔왔던 삶이었다.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반찬을 해놓았으니 가져가라는 엄마의 부름에 퇴근하다 친정에 들렀다. 폭염 경보로 외출을 삼가라는 지침에 등산 애호가 또한 거실에 앉아 있었다. 장마가 끝나니 폭염, 등산을 못 가서 답답하겠다고 안쓰럽게 아빠를 쳐다보는데 왠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엄마가 선수를 치며 소식을 전하는 말.

"이제 4번만 하면 된다고 그랬단다."


아빠는 3년 전 큰 수술을 하고 지금까지 항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 첫 진단을 받은 후로 체중이 20킬로나 빠진 아빠는 더 이상 무병장수를 꿈꾸지 않았다. 그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는 것, 살아있는 동안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잘 지내는 것, 그 정도면 만족한다고 했다. 욕심을 부리며 거침없이 지내던 젊은 시절의 꿈은 너무 무겁고 버거워 세상이 들어주지 않았으니 이 단순하고 소박한 바람 정도는 들어줄 거라 기대하던 아빠는 이따금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아주 가끔은 모든 게 다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처음 항암 치료를 시작한 날, 항암 치료가 몇 번 남았냐고 물으니 교수는 말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해야 합니다. 항암을 언제까지 하는지 보다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보자구요."

4일간 항암약을 몸에 달고 있는 날, 다시 3주마다 10시간을 굶은 채 채혈 검사와 CT를 찍고 오는 날이면, 입안이 다 헐어도 꾸역꾸역 밥을 집어넣던 억척스러운 독기도, 젓가락을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아 아빠는 온종일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아빠에게 기약 없는 항암 치료는 죄명을 모르는 자에게 내려진 무기징역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지 묻기 위해 아빠는 두 다리가 움직이는 날이면 산에 올랐다.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있는 힘껏 산에 물었고 외쳤지만 산은 대답하지 않았다고. 대답 대신 아빠의 질문이 메아리처럼 들려오면 다시 산을 내려오고 아빠는 다시 산에 올랐다.  

"한교수가 횟수를 정해서 알려준 게 이번이 처음이야."


아빠는 CT 검사를 하며 계속 지켜보겠지만 혹여나 4번에서 10번으로 늘어나도 처음으로 한교수가 횟수를 정해서 답을 해준 게 너무 기뻤다고 했다. 처음으로 대답을 들었다는 것. 아빠가 사는 동안 꼭 듣고 싶었던 말이자, 유일한 꿈이었다는 그 한마디에 너무 놀라 크게 웃었고, 꿈이 이토록 작고 가냘픈 것이라 몰래 울었다. 소박한 꿈을 이어 나간다는 것. 꿈을 이룬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스치듯 지나가는 기억들이 내게 말했다. 아빠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이 바로, 3년 전의 수술실 앞에서 내가 간절히 바라던 삶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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