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다이어트 성공기를 쓰고 싶었다. 성공한 다이어터가 되는 게 목표였고 수기를 써서 주변의 칭찬과 존경을 얻는 걸 상상하곤 했다. 물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와 광고가 떠다니는 다이어트 대국 대한민국에서 저, 요즘 체중 관리해요-라고 말해도 뭐,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이어리를 테마별로 여러 개 쓰는 나에게 있어 다이어트 일기장은 매년 잊지 않고 구매하는 필수품이었고 그 일기를 시작하지 않은 적이 없기에,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스테디 다이어터가 맞으며, 이 다짐과 기록으로 나의 다이어트는 언젠가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다.
비장한 각오에도 불구하고, 나의 다이어트는 매번 창대하게 시작했지만 끝은 늘 조용했다. 입으로 들어간 모든 것들의 칼로리를 적고 "어차피 다 먹어 본 맛이다. 그만 먹어라."-등의 강력한 동기부여의 글귀들로 도배한 처음 몇 페이지들과 달리, 어느 지점부터 내가 왜 그것을 먹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해명과 핑계, 잦은 회식과 툭하면 먹을 걸 주는 혹독한 직장 내 스낵문화와 그 안에서 느끼는 다이어터의 소외감, 먹어도 찌지 않는다는 식이조절식의 진실과 음모론 따위의 찡그린 문장들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삼분의 일 정도 채워진 다이어트 일기의 나머지 페이지는 말끔한 여백뿐이었고, 그것은 말 그대로, 말이 필요 없는 엔딩이었다. 그 시점부터 갑자기 펜 색깔이 밝아지고 문장이 활기를 찾더니 연말을 앞두고 다이어트 일기를 다시 써야겠다는 다짐이 다시 등장하며 일기는 수미상관으로 마무리되었다. 늘 이런 일기를 반복하면서 그나마 다행인 건, 뻔한 서사마저 몸이 기억하고 적응한지라 평균 체중은 사실상 그대로였고 그 덕분에 요요 현상을 기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이어트 수기는 내가 쓸 수 없는 글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성공한 다이어터-라는 목표를 지우다 우연히 <사람을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목표지향적 취향에 딱 맞는 문장이라 생각하고 적어 두었던 것이다. '다이어트 수기'가 물 건너갔지만 목표를 하나 지우는 게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느냐-는 질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나의 철없는 대뇌는 그 멋진 문장을 멋대로 재조합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로 인식하며 버킷리스트는 순식간에 장바구니가 되고 있어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돌이켜보면 나는 유독 내가 먹은 것들을 기억하길 좋아했다. 칼로리를 계산하기 위해 나열한 먹은 것들의 흔적과 마트에서 사야 할 식재료의 목록, 밥 약속을 다녀온 날의 소회를 적는 걸 즐겼고 그것은 내가 먹은 것들을 기억하고, 더 나아가 함께 먹은 사람을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늘 먹는 생각으로 바빴다. 지금도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매우 궁금하다. 미래를 모르는 것이 행복한 이유는 신이 인간에게 점심 메뉴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즐거움이 생각보다 흔하지 않았다. 출근한 날 직장 동료들과 먹는 점심은 밥동무들의 취향과 선택을 고려해야 했고, 다이어터로 둔갑한 날은 곡기를 끊고 퍽퍽한 살코기와 푸성귀를 소스 없이 입에 넣어야 했기에 점심을 고르는 즐거움 대신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떠올리며 에너지를 쏟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다 어쩌다 가끔, 오늘 먹어야 하는 게 결정되어 있지 않은 날, 그러니까 내가 끌리는 것을 별 다른 제약 없이 고를 수 있는 날이면, 나에게 있어 '무엇을 먹는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만큼(혹은 그 보다 더) 심오하고 처절한 질문이었다.
무엇을 먹을래-에 대한 대답이 가진 묵직함 때문이었는지 나는 때때로 먹은 것들을 떠올리며 후회를 하거나 그 선택에 가담한 사람들을 원망했다.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감정과 더부룩한 배를 만지며 매번 식이 조절에 실패하는 나 자신이 너무 역겹고 찌질했다. 신나게 먹는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나는 '먹지 않아야 할 것'과 '또! 먹었다는 사실'에 갇혀 아무 맛도 기억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당시 이렇게 적었다.
"정신 차려. 스낵을 고르는 것보다 진짜 나를 찾는 게 더 급해"
이것은 어느 무기(無期) 다이어터의 치팅데이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즐거움과 그것을 온전히 누리는 성취감에 대한 고백이다.
나에게 치팅데이란, 숨 가쁜 하루를 달려온 나에게 주는 특식이고 존중이다. 실패한 다이어트 반성문이 아닌, 금이 난 일상의 틈새를 채우는 단단한 미식의 여정이다.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수 십 년 간 고민을 해왔지만 나의 성찰과 식욕은 한없이 보잘것없기에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다만, 나는 무엇을 먹고 사느냐 묻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수고했다고 주는 따뜻한 한 끼와 파이팅 해보자고 마시는 커피, 간절히 기다리며 참아낸 시간들이 주는 열매가 아닐까.
이 문장의 끝을 붙잡고 놓지 않은 채 묻고 또 묻는다. 나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무엇을 먹고 싶은가. 그게 무슨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냐며, 먹고 싶은 것 좀 못 먹는다고 큰일이 나느냐는 주변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나는 먹고살고 먹고 싶은 것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