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란 Sep 05. 2023

치팅데이, 그게 뭐 하는 건데?

어서 와, 치팅데이는 처음이지?

"여러분,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점심 메뉴를 정해도 될까요? 오늘이 치팅데이거든요. "


오늘 점심시간을 알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Y였다. Y는 샐러드를 고집하던 팀의 막내였다. 닭 가슴살을 챙겨 오거나 간단한 과일과 야채로 점심을 간단히 때우던 그는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같이 먹자며 동료들을 불렀다. 혹시 정해 놓은 점심 메뉴가 없다면 자기가 정해도 괜찮냐는 말투에는 왠지 자신감과 환희가 섞여 있었다.


'치팅데이? 그게 뭐 하는 건데?' 나는 그의 기쁨을 축하해주고 싶었지만, 처음 듣는 단어의 등장에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망설였다. 모르는 단어에 가로막힌 나는 앞뒤 문맥을 파악하는 능력을 잃은 채 당황하고 말았다. 의미를 유추하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머리를 굴려보았다. ‘-데이’로 끝나는 걸로 보아 아마도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 듯 싶은데. 설마 나만 모르는 건 아니겠지-하며 다른 동료들을 쳐다보는데, 아 정말요?그럼 먹고 싶은 거 말해봐요-하면서 이미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공감의 물결이 되어 격한 파도타기 중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어 대화에 찬물을 끼얹는 본질적인 질문, 즉 치팅데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했다. 사람들은 복음을 전도하듯 그 어느 때보다 친절한 표정으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치팅데이는 치팅(cheating)이라는 단어가 가진 본래 의미처럼, ‘속이는 날’이라고 했다.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우리 몸이 조절 식단에 적응하며 평생 그것만 먹을 거라고 기대하게 되는데, 그런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고열량 식단을 먹으며 우리 몸을 속이는 날이라는 게 사람들의 설명이었다. 한마디로, 특별히 스스로에게 먹을 것을 관대하게 허용하는 날, 안 먹기로 한 음식들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풀어주는, 일시적 섭식 해방의 날인 것이다. 나는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영양학적 근거는 한 귀로 흘려들은 채, 그저 조절식이 아닌 자유로운 식사를 즐긴다는 부분에 집중했다.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시기 내내  어느 때보다 예민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누가 그런 이름을 붙여 '날'까지 만들었냐고, 참 고마운 사람이라고 의견을 더했다. 조금 더 사심을 담아, 치팅데이를 한 달에 몇 번째 어느 요일로 공공연하게 지정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야심도 꺼내면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치팅데이는 본래 다이어트와 관련된 용어가 아니었다고 한다. 원래 그 단어의 시작은 마라톤 선수나 보디빌더들이 운동 퍼포먼스 향상을 위해 탄수화물을 이용하는 식단 방법*이라고 들었다.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을 치하하는 보상의 수단이면서, 더 나아가 운동 결과를 개선하기 위한 비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과학적인 전략도 나 같은 엉터리 다이어터에겐 속수무책이었다. 운동의 효과를 증가시키는 목적 대신, 이번에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라는 문장 뒤에 붙이는, 합리적인 미식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었다. 어떤 대식가의 말처럼 역시 ‘뛰는 놈 위에 먹는 놈이 짱’이었다.


Y는 점심 메뉴로 즉석 떡볶이를 선택했다. 그는 즉석 떡볶이 맛집을 알고 있다며 마치 최고의 맛을 정복하러 떠나는 탐험대의 선장처럼 앞에 나섰다. 서둘러 가자는 그의 말에 모두 일사불란하게 뒤에 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인원수에 맞게 적당한 양과 맵기를 조율한 뒤 순대, 튀김 등 각종 사이드 메뉴를 추가로 주문했다. 즉석조리여서 좋은 점은 일단 냄비가 눈앞에 놓인 다는 점이었다. 바로 등장한 즉석 떡볶이 세팅에 Y는 너무 먹고 싶었다며 같이 먹으러 와준 게 고맙다고 연실 감탄사를 날렸다.

즉석 떡볶이를 둘러싼 Y와 사람들은 국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지처럼 모두 같은 곳, 전골냄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같은 곳을 같은 호흡으로 같은 바람을 담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일로 만난 우리들이 이토록 솔직해지는 시간이 있었던가. 끓어오르는 국물을 바라보는 눈빛들은 사랑스러웠고 라면 사리를 넣기 전에 반으로 부술까요-라고 묻는 Y의 섬세함이 고마웠다. 잊지 않고 볶음밥을 주문하는 Y를 보며 나는 그가 온전히 그의 몸을 속이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치팅데이가 구글 캘린더에 기본 항목으로 등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다이어트 공휴일, 혹은 다이어트 해방의 날.


식사 후 편의점에서 다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Y의 ‘속이는 날’은 비로소 달콤한 완성되었다. Y가 애용하던 스낵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대부분 ‘슈가프리’, ‘글루텐프리’라고 적혀있었는데 그 ‘프리’가 내게 더 익숙한 ‘프리’와는 달라서 전혀 해방감을 느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Y가 절제의 시간을 캡사이신 가득한 떡볶이 국물에 버무려 한 입 가득 삼켰듯, 치팅데이로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프리’로부터 ‘프리’를 얻은 그는 해방감이 조금 과했는지 몸이 나른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갑작스럽게 고열량 식사를 하는 바람에 혈당 스파이크가 온 게 아닐까 걱정을 했지만 저녁에 수만 보를 걸을 예정이라는 말에 걱정 대상을 잘못 짚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누구보다 나른한 표정으로 Y의 치팅데이를 함께 마무리했다.


치팅데이. 왠지 기특하고 멋져 보이는 단어를 또박또박 적으며, 어쩌면 오랫동안 나를 설명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유래가 어떻든, 치팅데이는 나에게도 비책이었다. 사실, 이름만 생소했을 뿐, 나는 오래전부터 이미 이 방법으로 몸을 속이고 또 속여왔다. 신조어인 줄 알았던 이 단어는 사실 내가 가장 많이 해오던 짓의 과학적인 정의이자 뻔뻔한 변명이었다. 풍부한 치팅의 기억은 메뉴와 형태, 그리고 이유마저 다양했다. 어떤 날은 뭔가 어지러운 느낌이 들어서 달콤한 음식을 먹었고, 또 어떤 날에는 극심하게 우울하여 피로회복을 위해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나는 상당한 죄책감에 빠지긴 했지만 다시 목표를 세웠고, 툭툭 털고 일어나 뛰었다. 한동안 어지럽거나 우울하다는 변명을 깊숙이 넣어둔 채.


치팅데이를 만든 사람은 아마도 절제와 자기반성을 반복하며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거쳐야 하는 고달픈 사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언덕을 오르는 마라토너에게 물을 던져주듯, 치팅데이는 다이어터의 지루한 갈증과 휴머니즘의 결핍을 채워주고 싶었을 것이다. 퇴근하며 다시 동네를 뛰고 있을 Y의 달리기 코스 끝에 다음 치팅데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나만의 속도로 퇴근 길을 걸으며 수많은 해방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출저: ALLURE website

이전 01화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