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엄마가 대학원? 남편이 대단한 사람이네

완벽주의 워킹맘의 취향 사수 에세이

by 헤이란


2018년 가을, 나는 고민 끝에 대학원을 입학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커리어 고민이 깊어졌고 그 대안으로 공부를 선택했다.



당시 내 아이는 6살이었다. 내가 만약 공부를 한다면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끝냈으면 했다. 적어도 아이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저녁과 주말만큼은 식탁에 앉아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목표를 정했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반드시 대학원을 졸업한다.'



그렇게 나는 가방끈 붙이기에 돌입했고 아이는 유치원 선생님께 엄마를 이렇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학생이에요. 매일 숙제하고 시험 걱정해요.




애기 엄마가 대학원을 다니는 거야? 대단하다.


워킹맘이 대학원을 다니면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대단하다'이다.

처음에는 바쁜 시간 쪼개서 공부를 하다니 존경스럽다는 칭찬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간혹 '대단하다'는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게 바쁜데 학교까지 다니다니 용기가 대단하다, 모성을 뛰어넘은 공부 욕심이 대단하다....




애기 엄마가 대학원을 다닐 생각을 어떻게 했어?
주말에 남편이 혼자 육아를 하다니 대단한 남편이네.




대학원 다니는 엄마를 하지 말고

주말에 육아하는 아빠를 할 걸 그랬다.

하지만 어쩌겠나. 난 아빠가 아니고 엄마인 것을.


애초에 대단한 사람 되겠다고 대학원을 선택한 건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저녁과 주말을 반납한 채 일하고 또 공부하는 내가 아니라, 주말에 아내 없이 육아하는 남편이 대단하다는 반응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순간 너무 억울해서 곱게 못 지나치고 대꾸를 했다.

주말에 남편이 혼자 아이를 보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저는 제가 더 대단한 것 같은데요.



내 표정을 보며 아차 싶었는지 "공부하는 엄마는 위대하죠 허허" 하면서 안절부절못한다.

저희 남편만큼 그쪽 아내 분도 대단하신 거죠. -라고 하려다 참았다. 할 말은 많지만 거기까지만 했다.

'남편을 이렇게라도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었으면 이것도 대단한 거지.'


그리고 어쨌든,

지독한 엄마든,

가정에 소홀한 날라리 아내든,

나의 행보가 그들에게 충격적이었다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차라리 뿌듯한 기분이다.



대단한 건 '나'고,
당연하지만 고마운 건 남편이고.



처음 대학원을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가 떠올랐다.

늦게 시작하는 공부는 청소년기의 공부와는 다르다. 돈과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야심 찬 포부는 주변으로부터의 도움이 없다면 시작도, 진행도 할 수 없다.



추천서


일단 대학원 입학 원서와 함께 추천서가 필요했는데, 당시 나의 추천인은 남편이었다.

'내가 추천해도 되는 거야?' 갸우뚱하더니 기꺼이 추천서를 써주었다. 그 추천서는 남편이 대학을 같이 다닌 동기이자, 10년 차 일개미의 고군분투 과정을 지켜본 오랜 지인, 대학원에서 얻고자 하는 목표의 가장 큰 공동 수혜자, 그리고 커리어를 마음껏 제도해보라는 지지자로서 보여준 응원의 표현임을 난 알고 있다.




출석


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석인데 이게 또 만만치가 않다.

대학원 수업일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이었다.

금요일은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을 받았다.

출석을 위해 남편과 나는 서로의 야근, 회식 일정을 매일 확인해야만 했다. 특히 금요일은 우리 둘 누구에게도 야근과 회식은 허락되지 않았다.

금요일에 받은 과제를 다음 날 수업 전까지 마쳐야 할 때면 내가 이 고생을 왜 하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엄마치곤 대단한 행동이라고 하니 오기로 더 열심히 했다.



학비


가장 울컥하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학비인데, 사실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느냐에 따라 학구열이 다르다. 한 달 10만 원 영어회화 클래스에서는 '공부를 즐겼다'면, 매 수업 당 10만 원에 달하는 대학원 과정은 '졸업과 전쟁을 치렀다'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돈이면 아이가 영어 유치원을 다닐 수도 있고, 남편의 차를 바꿔줄 수도 있었다. 더 나은 커리어를 위한 투자라지만 보장된 커리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결과는 불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향 껏 스스로에게 상을 준다고 생각하라는 가족들이 그저 고마웠다. 2년간의 투자는, 샤넬백보다, 에르메스 목걸이보다 더 값진 명함이 될 거라 확신했다.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고
하소연하는 엄마 말고,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될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나의 학교생활은 무사히 끝났다.

고생했다, 잘했다, 주변으로부터 과분한 격려를 받으며 졸업장을 받았다.


아이는 엄마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비로소 엄마가 숙제와 시험으로부터 해방되고 그런 엄마를 되찾은 아이의 환호성이었다.

도 엄마를 기다리는 게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엄마 잘했어.



진흙으로 단단한 그릇을 만들려면 뜨거운 열과 그것을 지켜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의 슬기로운 대학원 생활은 나의 버닝타임과 가족들의 기다림 덕분이다. 어쩌면 내가 얻은 학위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식구의 공동 작품이라 함이 더 맞겠다. 같이 이룬 결과라서 자랑스럽다.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하며 나는 목표를 이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더 완전한 우리 편이 되었다.



다음으로 내가 저지를 선택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주변의 응원을 받고 기다림을 안고 계속 달려갈 것이다. 그렇게 취향 껏, 더 완벽하게,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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