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엄마들은 공부한다 그러면 오구오구 기특해라, 하면서 칭찬도 해준다는데 엄마는 다르다. 속도를 좀 내볼까 하면 어느새 조수석에 앉아 속도 조절을 외치는 잔소리꾼이다.
칭찬 좀 해주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부모님의 칭찬이었다.
부모님께 칭찬받는 게 좋아서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공부 열심히 했고
말썽 피우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나의 목표는 최고의 딸이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나는 희망 진로를 의대로 정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의사가 되고 싶었다.
사회적 명성, 의사로서의 보람, 사람을 살리는 일, 그리고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직업.
이게 딱 내가 원하는 길이라 느껴, 저녁 식사 중에 말을 꺼냈다.
엄마, 아빠, 저 의대 가고 싶어요.
반응은 의외였다. 특히 엄마는 갑자기 무슨 의대를 가겠다니?라는 표정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해야지. 그런데 그 힘든 직업이 왜 좋으니? 엄마는 네가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어.
엄마는 내가 안정적으로 무난하게 살았으면 했다.
난 그 '안정적이고 무난한'이라는 표현이 왠지 싫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교사'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직업인데 깊은 오해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왠지 엄마 눈에 성에 차지 않는 딸이어서, 내게 더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하는 말로 들렸다.
수능 시험을 치르고 난 내가 의대를 가기 어렵겠다고 판단하여 이공계열 학과로 진학했다.
생명과학부.
마침, 당시는 동물복제에 대한 뉴스가 자주 보도되던 때였다. 엄마는 내가 무난한 연구자의 길을 걷겠다며 안심을 한 듯하다. 물론 난 연구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 엄마가 모르는 시간에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의 골에 빠졌다.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고 해외 봉사를 가고 영어 스터디를 가고. 저녁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과외를 하지 않은 기간은 해외 봉사를 다녀온 기간뿐이었다.
한밤 중에 귀가한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적당히 해. 무난하게 살면 잘하는 거야.
외국계 기업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엄마는 복지가 좋은 회사라서 잘 되었다고 안심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따로 공부해야 할 게 많았다.
퇴근 후에는 못다 한 업무를 하고, 주말에는 영어 스터디를 나갔다.
내 업무는 규제를 지키고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기한 엄수와 자료 확인은 필수였다.
실수를 할까 봐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중요한 감사나 외부 조사를 받는 날은 며칠 내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힘들게 마친 업무는 잘 마무리되었고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경영진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상패를 들고 가니 엄마가 말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니 상 받는 게 당연하지. 이제부터는 쉬엄쉬엄해.
스물일곱 살, 건강검진을 받고 며칠 뒷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추가 검사를 하자고 했다.
자궁에 뭐가 있는데 수술을 해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고.
결국 수술을 위해 난 입원을 했다. 10센티 자궁 근종을 떼어내는 수술이었다.
조직 검사 결과 다행히 악성 종양은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 비로소 엄마는 웃었다.